<좋은시를 찾아서> 요리 연습
<좋은시를 찾아서> 요리 연습
  • 승인 2009.01.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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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명 학

아내는, 회갑을 치른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딸네 집에 손자 봐주러 가거나
며칠 외국여행이라도 떠날 때를 대비해서
나 혼자 밥해 먹는 연습을 시켰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다 하니까 그만이지만
반찬을 만들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간은 재료에 미리 해야 깊은 맛이 나고
채소와 양념은 나중에 넣어야 산뜻해져요.”
“나 없다고 아무 그릇에나 담아 드시지 말고
음식에 맞는 예쁜 그릇 찾아 쓰세요.”

아내는 사랑으로 나를 타일렀지만
아내가 영영 안 돌아오는 날은 어쩌나 싶어
나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사람아, 정말 자네가 떠나버리는 날엔
예쁜 그릇이 내게 무슨 소용이 되랴?

찬장에 반들반들 쌓인 그릇들 볼 때마다
내 회루悔淚도 그렁그렁 쏟아질 텐데…

▷울산 출생.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및 아주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문학예술』시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울산대학교 인문대학장, 교육대학원장 역임. 시집으로「남쪽으로 열린 창문」「겨울 소리개」(문학예술 출판부 간행)가 있다.

부부 사이의 애정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양극화 현상을 보이는가 싶다. 어떤 이는 간절함을 너머 애절한 사랑을 가꿔가고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부는 물과 기름의 이질감과 함께 하늘과 땅을 제각기 쳐다보며 여생을 허비하는 이도 있다.

양명학의 `요리 연습’은 부부애의 확인이며 사랑의 복습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내는 사랑으로 나를 타일렀지만 / … / 나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는 화자의 아내 사랑은 이 시 전편에 완벽하게 채색된 정겨운 풍경화처럼 가슴이 비어 있는 사람에게 부부애를 재인식 시켜주고 있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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