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집념은 아름답지만 집착은
<대구논단> 집념은 아름답지만 집착은
  • 승인 2009.01.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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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 교육학박사)

여름철 부나비는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에 뛰어든다. 앞의 나비가 뛰어들어 곧 죽어가는 데도 또 날아든다. 잠시만 물러나 바라보면 자신을 구할 수 있음에도 머뭇거림 없이 마구 날아든다.
사람들은 이러한 부나비를 보고 비웃는다.

그리고 한 치 앞을 모르는 그 단견과 행동을 인생사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단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집착(執着)이라고 하고, 이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행복의 길로 들어서는 기초가 된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먼저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선거에서 여러 번 떨어져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음에도 선거 때마다 나오는 사람이나, 노름에서 돈을 잃어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또 노름판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바로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달성하려 하지 않고 비이성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자신이 집착에 빠져있지 않고 집념을 이루려 한다고 강변한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인간 승리를 이룩한 사람들은 대개 아름다운 집념을 달성한 사람들이다. 우리 둘레에 집념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만 집착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는 불건전한 사회가 된다.

로마 신화에 나르시스 이야기가 있다. 나르시스는 매우 잘 생겨서 모든 아가씨들의 사랑을 받았다. 나르시스는 자만심에 도취되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자만심 또한 자기 집착이 아니던가?

집착은 필연적으로 악연을 만들게 되는 법이어서 나르시스는 더욱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나르시스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에코라는 요정이 신에게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나르시스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나르시스가 자기 자신에게 더욱 반하여 정신을 잃게 해 주십시오.”

언제나 간절한 기도는 통하는 법이어서 마침내 나르시스는 더욱 자기 밖에 모르게 되었다. 어느 날, 나르시스는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목이 몹시 말랐다.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구부리자 샘물 수면에 아름다운 얼굴이 비쳤다. 나르시스는 수면에 비친 얼굴이 자기의 모습인 줄도 모르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나르시스는 가슴이 벌떡벌떡 뛰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붉어졌다. 간신히 사랑을 고백했지만 수면에 비친 얼굴에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도리어 이죽거리는 모습이 자신을 비웃는 듯하였다. 그럴수록 나르시스는 물러나지 않고 더욱 깊이 매달렸다.

나르시스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가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밤중에는 그나마 물속의 얼굴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나르시스는 더욱 애타게 샘물 속의 얼굴을 찾았다. 마침내 나르시스는 미친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수면에 비친 아름다운 얼굴로부터 거부당했다고 생각한 나르시스는 결국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말았던 것이다.

나르시스는 숨을 거두면서도 `안녕, 내 사랑!’을 외쳤지만 물속의 얼굴은 더욱 찡그리기만 할 뿐 나르시스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다. 이리하여 나르시스의 집착은 파국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집착은 이처럼 허무할 뿐만 아니라 끔직하다.

그럼에도 집착을 쉽게 버릴 수 없다. 나르시스에게 향했던 에코 요정의 집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말을 할 때마다 끝을 맺지 못하고 꼬리가 남아 메아리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에코 요정의 집착이 계속되는 한 메아리도 계속될 것이니 어쩌면 인간은 집착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르시스가 죽자 신(神)은 사람들에게 집착을 버리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물가에 수선화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집착을 집념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길러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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