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아! 광개토대왕비
<대구논단>아! 광개토대왕비
  • 승인 2009.12.2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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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규 (대구보건대학 안경광학과 교수)

며칠 전 어느 일본인이 광개토대왕비 탁본 4점을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탁본은 아라키조지(荒木襄治)라는 일본인이 구입하여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었던 것을 지인인 우지이에유타카(氏家裕人)씨를 통해 우리나라에 기증 의사를 밝혀왔고, 전문가 감정결과 진본임과 아울러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기증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기증받은 탁본은 크기 145×530cm로 현재 중국 집안현(輯安縣)에 세운 훈적비를 1920년경 탁출한 석회탁본이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라고 불리는 광개토대왕비는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의 능비로서, 414년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이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으며, 응회암(凝灰岩) 재질로 높이 약 6.39미터, 면의 너비 1.5미터이고, 네 면에 걸쳐 1,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가운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려우나 대체로 고구려 역사와 광개토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다. 중국 길림성 집안현은 고구려 도읍이던 국내성이 자리하던 곳이다. 성은 다 허물어져 지금은 성벽 일부만 남아있지만 그 지역은 자체가 커다란 고구려의 무덤이다.

현재 발견된 것만도 1만2천여기. 장수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장군총을 비롯해 수많은 무덤이 떼를 이루는데 광개토대왕 무덤으로 알려진 태왕릉도 그 중 하나이다. 도굴로 무덤 속엔 아무 유물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광개토대왕을 가리키는 `太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만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찬란했던 광개토대왕 시대를 증언하는 유일한 역사기록은 바로 광개토대왕비뿐인 것이다.

이 비석은 조선 후기까지 확인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청의 만주에 대한 봉금제도가 해제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고구려 멸망과 함께 시간 속에 묻혀있던 광개토대왕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120여 년 전부터이지만 광개토대왕비는 현전하는 역사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국사기보다 무려 700년이나 빠를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료에도 나와 있지 않은 소중한 당대 기록들을 비문에 담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호태왕비’라 부르는 광개토대왕비는 관광객들에게 관람만 허용될 뿐 중국정부가 엄격히 관리하며 사진촬영도 절대금지하고 있다. 비문의 서체가 독특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중국 금석 학자들 사이에서 탁본으로 잘 알려졌다고 전해지는 광개토대왕비는 동북아 고대사 연구에 가장 중요한 금석문으로 한·중·일 삼국의 관심을 모으며 오늘까지 1,500년 세월을 거기에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 TV에서 `대조영’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던 무렵 러시아 연해주지역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고려인들이 2만 명가량 거주하고 있는 우수리스크 지역에 발해의 성터가 남아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거기엔 현재 농사조차 짓지 않는 넓은 터에 나무와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성 주변 어디에도 그곳이 과거 발해시대의 성터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표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실상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역사의 흔적은 사라지고 이름 그대로 성이 자리했던 `터’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대조영과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는 제10대 선왕(宣王)때 5경 15부 62주의 행정구역을 갖췄고, 현재의 러시아 연해주까지 진출해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강력한 국세(國勢)를 떨쳤기에 과거 발해가 지배했던 연해주지역에는 아직도 여기저기 발해 성터들이 많이 남아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땅, 우리 선조들이 뿌리 내려 살았고, 선조들의 얼이 살아 숨 쉬던 그 곳이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님에 가슴이 저렸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때마침 우리지역에 (사)광개토대왕기념사업회가 최근 설립되어 중국에 있는 비와 똑같은 크기와 재질과 모양의 광개토대왕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현실이다.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고, 일본이 끊임없이 독도를 자기영토라 주장하며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 것을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한번 잃었던 영토를 다시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절대 꿈을 잃지 말고 광개토대왕의 정신과 기상으로 마음의 영토부터 넓히면서 소중한 우리 선조의 유산을 지키고 찾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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