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에밀레손택수
연꽃잎 위에 비가 내리친다
에밀레 종신에 새겨진 연꽃을
당목이 치듯, 가라앉은
물결을 고랑고랑 일으켜세우며 간다
수심을 헤아릴 길 없는, 끔찍하게 고요한
저 연못도 일찍이 애 하나를 삼켜버렸다
애 하나를 삼키고선 단 한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
어린 내가 아침마다 밥 얻으러 오던
미친 여자에게 던지던 돌멩이처럼
비가 칠 때마다 연꽃
꾹 참은 아픔이 수면 위로 퍼져나간다
당목이 종신에 닿은 순간 종도
저처럼 연하게 풀어져 떨고 있었을까
에밀레 에밀레 산발한 바람이
수면에 닿았다 튀어오른
빗줄기를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
◇손택수=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외 다수
2011년 제43회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
<감상> 넓은 연꽃잎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들을 종을 치는 당목에 비유한 시인의 눈이 날카롭다. 특히 잔잔한 물결을 내려치는 빗줄기들이 ‘고랑고랑’ 일으켜 세운다고 표현을 한다. 의식의 자각, 사물의 재해석이 돋보이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슬픔의 한 결을 보며 공감할 수밖에 없다. 에밀레종에 얽힌 전설과 맞물려 한 아이를 삼킨 연못이 함께 죄를 짓고 서로 마주하며 가슴을 치는 데, 시인의 양심이 동참을 한다. 어린 시절에 밥 얻으러 온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하던 ‘나’도 속죄할 그 무엇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김사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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