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문숙 <비로소 맑은 빛깔 그 내면의 원>
<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문숙 <비로소 맑은 빛깔 그 내면의 원>
  • 승인 2017.10.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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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숙
김문숙

캔버스 위에 중첩된 빛깔이 담백하다. 맑음이 더해져서 푸름이 깊다. 대지의 품속일까? 비와 바람의 결정체인지도. 감정의 산물로만 치부하기엔 고요한 화면이 무척 간결하다. 율려(律呂)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김문숙의 작품을 본 첫 인상이다. 심신수련이 일상화된 그녀의 맑은 눈빛은 살아온 세월에 비례해 오히려 투명하다. 작품과 작가에게서 동시에 풍겨져오는 이러한 느낌은 앞으로도 꾸준할 것 같은 예감이다.

김문숙은 1960년생 대구 토박이 화가이다. 작업실을 대명동에서 파동으로 옮긴지는 16년 됐다. 20대 때부터 시작된 자기 성찰적인 자세 때문인지 그녀에게서는 수행자의 향기가 배어져 나온다. 곁에 서면 덩달아 정화될 것 같은 기분은 다만 몰랐을 뿐 지금 있는 그 자리가 근원이고 본질이자 깨달음의 자리임을 체득한 그녀의 기운 때문일 것이다. 작품 분석에 앞서 작가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이다. 감출 수 없는 인간적인 관심이기도 하다.

작가 김문숙의 캔버스에는 구체적인 형상이 드물다. 그보다 색을 품은 붓 자국이 빼곡하다. 겹겹이 축적된 붓의 결은 면을 이루고 일필휘지로 탄생한 원이 존재를 엷게 각인시킨다. 형상들은 대략 레인스틱→원기둥→원의 순서로 기록된다. 번다하지 않은 형상은 화면전체를 주도하거나 배경으로 융화되곤 한다. 물아일체나 무아의 경지 또는 원형상을 조형한 것으로 읽혀진다. 중첩된 층간만큼의 깊이로 우러나온 색은 색면추상화가들의 작업방식을 연상시키지만 우리의 시각이 작품의 표피에만 머문다면 작가의 창작은 뒷심을 잃게 된다.

브랜드처럼 자기만의 이미지 굳히기는 작가들의 보편적 지향이다. 김문숙은 여기에서 스스로 한발 물러나 있다. 이름 석 자를 세속적인 자리에 끌어올리려 하지도 않는다. 전통적인 조형예술에서 색과 형태 그리고 구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현대미술의 복합적 매체운용과도 거리를 두는 전통미술이다. 김문숙의 작업은 이러한 전통과 현대미술의 형식적인 범주에 편입시킬 필요도 없을 듯하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화가라는 사실이며 작업과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에겐 작품이 곧 성찰의 흔적이자 내면정화 과정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김문숙의 작업은 <바라보다>(SPACE129, 2002년) 시리즈에서 <레인스틱 RAINSTICK >(갤러리토포하우스, 2008년) 시리즈를 거쳐 2013년에는 <원을 그리다 Record Over Circles>(봉산문화회관)로 이어졌다. 색채가 중심이지만 화면 곳곳에서서 기하학적 형상들이 파문을 일으킨다. 그의 화면에서 지각되는 색의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 측면의 연관성을 다 알 수는 없다. 뉴턴 이래로 미술에서의 색채와 과학에서의 색채는 완전히 구분되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문숙이 우려낸 색의 이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감각을 수치화시킬 수 없듯이 과학적인 논리로 감각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이 감정과 이성의 접점이고 임계점일지라도 김문숙 작가에게 색의 축적 행위는 앞서 거론한 수양과 다분히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병약했던 그녀가 현재까지 으뜸으로 꼽는 것은 건강한 삶이다. 한계점에 다다랐다가 다시 찾은 건강은 감사에 더한 새로움이다. 이러한 사실은 김문숙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결국 그녀의 조형요소 전반은 건강 또는 명상과 수련과 연결된다. 하여 김문숙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14회 개인전(2013년) 이후 전시회 소식이 뜸하지만 스스로 부리는 느긋함은 여유롭다. 삶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상대마저 따로 두지 않는 작가는 현재 둥근 원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아직 채워질 면이 남은 반구 보다는 완전함에 가까운 원이 김문숙 작가에게는 화두이자 삶의 지향점이 아닐까 한다. 지나친 욕심이라 하여도 캔버스와 붓마저도 놓고 온전히 가벼워지는 순간이 예술이 되는 경지가 기대된다. 그녀는 현재 즐겁게 작업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빛깔이 맑고 고요하다. 학문처럼 작업도 앎이 아닌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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