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
  • 승인 2017.11.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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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정글이다. 날마다 아파트 숲에서 빠져나와 수많은 차량들 행렬이 빼곡한 도로 위를 달린다. 저마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우리들은 고목들처럼 생기 잃은 빌딩들 품을 파고들며 어제처럼 새롭지 않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정글 속에서 불멸의 진리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다. 별로 어렵지 않은 진리를 온갖 현학적인 표현과 우회적인 편린들을 지식이랍시고 가르치는 학교라는 곳도 있다. 아이들은 젖을 떼자마자 어미의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서부터 경쟁이다. 이름이 좀 난 곳이거나 선행 학습의 달콤한 덫을 놓은 곳이라면 치열한 추첨을 통해서 입원이 가능하다. 유치원은 어떠한가. 유명 대학의 부설 유치원은 새벽부터 줄을 서는 북새통을 치르기도 한다. 저출산으로 인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찾아보기 힘들다는데, 그 아이들이 모두 부설 유치원과 사립 초등학교 원서 접수창구에 몰려 있다.

1949년에 조지오웰이 쓴 소설 ‘1984’가 새삼 생각나는 것은 지금의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토피아와 상반되게 미래를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그려낸 세상을 뜻하는 말이 디스토피아(dystopia)라고 한다.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세상은 크게 4단계의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빅 브라더로 불리는 지배계급과 고위 공무원에 해당하는 내부 당원, 하위 공무원 격인 외부 당원. 그리고 가장 하위 계급인 프롬이 그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체제에 의문과 불만을 가진 외부 당원이다. 각 가정마다 공급된 텔레 스크린은 TV와 비슷한 장치로서 국민들을 감시하고 세뇌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 치의 관용도 없이 수행하고 있다. 주인공은 이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을 한다. 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서도 안 되고, 표정까지도 통제하는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인 윈스턴을 조지오웰은 끝내 빅 브라더의 손에 담담하게 넘겨주고 만다. 그야말로 미래의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들의 현실이 점점 그가 그려 놓은 미래를 닮아 가게 될까 봐 두렵다. 이미 닮아 있기 때문에 두려운 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지만,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인 듯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중사고를 받아 들여야 하는 모순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모순의 역할, 이를테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 (작품에서는 교정이라는 표현을 썼지만)하는 업무가 필요하게 되고 그 업무를 수행하는 말단 공무원 윈스턴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을 알고 조작해야 하는 윈스턴으로서는 고뇌와 갈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당은 과거 당에 반대하고 투쟁했던 세력들을 비판하는 ‘2분 증오’를 통해서 정신 무장을 강요한다. 소설 ‘1984’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희망이라고는 잠시 사랑에 빠졌던 주인공의 탈출 시도 장면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물며 그 사랑조차도 해결할 수 없었던 견고한 모순의 세상 1984년은 조지오웰에게도 그리 멀지 않은 35년 후의 세상이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빅 브라더의 슬로건은 그에게 어쩌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일본이 패망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인 1945년 8월 17일에 영국에서 출간된 ‘동물농장’에서 그는 인간들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동물공화국을 세우고 똑똑한 돼지들이 지배한다는 줄거리의 풍자를 발표한바 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의 소련의 정치적인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후에도 동물들의 모델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를 두고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위기의 시기일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는 막바지는 마지막 단계를 뜻하기도 하지만, 막다른 곳을 의미하는 ‘막판’과 ‘마지막’이라는 의미와 함께 하기도 한다. 흔히 막바지를 오르막에 비유하기도 한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비교적 수월한 내리막을 만나는 것이 상식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현실 ‘2017’을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할 지는 오롯이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구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디스토피아에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거의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청정 정부를 바로 세워야 한다. 과거를 지배해서도 안 되고 현실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진실은 하나뿐이다. 과거를 가리고 나면 그 긴 휘장은 현재와 미래의 눈을 가리는 폐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혹자는 국제 경쟁 사회에서 과거사에 집착하느라 뒤처지는 건 아닌 지를 우려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솜처럼 부드러운 눈도 오랜 시간 쌓이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집채도 무너뜨린다. 지금이 적기다.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보다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현 정부가 그 어떤 부조리의 멸균 작업이라 할지라도, 머뭇거릴 이유는 한반도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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