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뿌리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
독립운동의 뿌리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
  • 승인 2017.11.1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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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태 (안동시 공무원)

지난 10월 추석에 대통령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여 “재조산하와 징비의 교훈을 되새깁니다” 라는 방명록을 남겼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1597년에 정유재란이 재발되어 이듬해인 1598년에 7년 전쟁이 끝나고 다시는 국난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징비록을 남겼지만,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1910년에는 치욕적인 일제식민시대까지 맞이했으나 그 때마다 백성의 이름으로 의병이 일어나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켜낸 정신적 지주가 됐다.

1592.4.13. 20만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천하태평시대의 조선관군은 연전연패하고 한 달 만에 수도가 함락되고 임금이 피난길에 오르자 조선팔도에서 의병이 봉기했다.

나라도 관군도 백성들을 지켜줄 수 없었기 때문에 각 지역의 유생들을 중심으로 결사항전의 의병활동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5월 초유사(招諭使)로 임명된 김성일(金誠一)은 각 지역의 유림에 초유문을 보내창의(倡義)를 독려했다. 특히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고제(高弟)로 안동은 그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이어 중순에는 김성일의주청에 의해 안집사(安集使)에 임명된 김륵이 안동 지역에 와서 소모활동(招募活動)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6.11 예안에서 김해(金垓)를 대장으로 삼고 열읍에 포고하여 향병을 조직하고 훈련했으나 전군수 조목(趙穆), 전현감 금응협(琴應夾), 김부윤(金富倫) 등은 군량미를 내놓았다. 퇴계선생의 고제(高弟)인 월천(月川) 조목(趙穆)이 69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 논의에 적극 협력하였으며 40여명이나 군량미를 내놓아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았다고 한다.

8.5 김성일의 초유문을 받은 진사 배용길(裵龍吉)이 안동지역 사림에 전하였고 8.9 퇴계선생을 모신 여강서원에 모여 창의를 준비하였으며, 1592년 8월 20일 본격적인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이 창설됐다. 안동, 예안, 의성, 의흥, 군위 등의 의병이 안동 일직현에 모여 김해(金垓)를 대장으로 하여 모든 의병을 통합하고 그 이름을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으로 했다.

그 후에 좌부장 이정백, 우부장 배용길, 본진정제장 김윤사, 류복기 등 조직을 재정비하고 경상하도와 영주(당시지명은 영천)지역의 부대도 통합하여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은 명실공히 경상좌우도의 모든 의병을 아우르는 1만 병력의 대규모 부대가 되었고 일직 운산역에서 행군할 때는 그 행렬이 10리에 뻗쳤으며 이를 본 주민들은 모두가 그 위용에 놀랐다고 한다. 당시 전국 의병 3만명의 1/3이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 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의병부대가 조직되었다는 것을 경상도순찰사, 병마사, 안동부사 등에게 알리고 관군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연합작전으로 왜적을 토벌하였다고 한다.

김해는 1592년 9월부터 왜군의 출몰이 잦은 서쪽지방을 방어하기 위하여 풍기, 영주, 예안, 봉화, 안동의 향병을 지휘하여 왜병의 총공세를 차단하였으며, 특히 경상좌우도가 분기하고 영남과 충청을 연결하는 전략상 매우 중요한 문경새재 인근의 당교(상주 함창)에 주둔하고 있는 왜병들을 야습하고 진천뢰까지 사용하여 많은 왜적을 살상하고 큰 피해를 입혔다. 이듬해까지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은 당교와 그 인근에서 왜적과 전투를 계속하며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왜군들의 군량미 조달을 위한 곡창지대 전라도로의 진격을 막아냈다고 한다.

왜군을 남쪽 끝까지 토벌하던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은 6월 19일에 김해 대장이 경주 진중에서 갑자기 순국하면서 귀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은 와룡 오천 김해, 이하 이형남, 임동 수곡 류복기ㆍ복립 형제(안동충의역사체험관 기산충의원 개원), 풍천 구담 김윤명ㆍ윤사 형제 등 온 백성들과 수많은 가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특히 서애 유성룡, 월천 조목, 학봉 김성일 등 덕망이 높은 유학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소 실천한 충효정신은 우리 후손들이 엄숙한 자세로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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