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선(線)
침묵의 선(線)
  • 승인 2017.11.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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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아니 그럴 때가 많다. 어려운 일을 겪게 되어 선배나 은사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을 때, 만족스러울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라. 어떤 경우에 가장 만족스러웠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의외로 답은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상한 조언자일수록 피곤하다.

‘나’와 빙의되어 격분해서 그가 잘 알지 못하는 상대를 편협하게 비방하거나, 당장 인연을 끊으라는 속 시원한(?) 결단을 권하기도 한다. 모순되는 감정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이 과거에는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이유였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 자리를 파하고 돌아 나오는 길이 씁쓸한 이유가 거기 있다.

가을이다. 수확의 풍요로움을 가짐과 동시에 수확 후에 텅 빈 들판처럼 쓸쓸하고 허전한 계절의 막바지까지 가을의 정서는 광범위하다. 형형색색 단풍의 화려함과 거리에 떨어지는 낙엽이 바람에 이리저리 유린되는 잔인한 계절, 가을이 오면 많은 이들이 유독 많은 사랑을 하고 더 많은 이별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들의 사랑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부류들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보다 더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예로부터 중매는 잘하면 비단옷 한 벌이고 잘못하면 뺨이 석대라고 했다. 왜 뺨을 맞을까. 소개하는 이가 소개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방문 판매를 하는 직원에게 제품을 구매한 후 부작용을 나무라듯 하는 소개받은 이도 문제지만, 집중적으로 이를 ‘고객 관리’차원의 불필요하게 관여하는 넓은 오지랖 때문에 사태가 악화되기 일쑤다.

침묵이 답이다. 조언을 해줄 때도 얼마나 잘 경청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조언자의 자질이고 능력이다. 중간에 말을 가로채서 온갖 미사여구로 어떤 결정에까지 일사천리로 답을 내달라는 것이 아니다. 고민을 토로할 때는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 달라는 편보다는 함께 고민을 들어주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거기까지다. 거기까지만 함께 걸어가 주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혼자 결정해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언자의 태도다. 어차피 선택해야 하는 그 길은 두 사람이 들어설 수도 없을 만큼 좁게 마련이다. 혼자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바른정당의 유승민 대표의 예방을 대놓고 거부했다. 그럴 수 있다. “바른 정당은 배신자 집단이지. 정당이 아니다”라고 표현한 홍준표 대표의 거부 사유가 시쳇말로 ‘대박’이다. 그렇다면 바른 정당이 배신자 집단인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보수 대통합’의 대의명분을 앞두고 비위 좋게 이전의 회동을 견뎌 냈다는 의미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김무성의원과 유승민대표의 입맞춤이 당시에는 얼마나 달콤했을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해관계자들의 노림수는 국민들 모두 알고 있었고, 마침내 김무성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의 입당으로 결별을 선언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각 당 구조나 당성의 차별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했을 법한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몰랐을까. 이 모든 것을 예상했었다면 고수임에 분명하다. 점점 멀어져만 가는 국민들의 관심을 단 기간에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들의 대통합이 한편으로는 두려워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겠다는 표현은 크게 나쁘지 않다. 어차피 정당이라면 서로 견제하며 정치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고 그들의 표현대로 폭주든 독주든 막아야 하는 것은 지당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유승민대표는 합리적인 보수를 표방하며 지난 대선 때도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은 것도 사실인데, 왜 배신자 집단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한 것인지 아직도 의문이다. 모든 날개를 접고 자유한국당의 품으로 들어오라는 포석인지, 정치 선배로서의 따끔한 충고인지는 모르겠으나, 근본적으로 타당의 대표에게 할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정치는 게임이다. 가벼운 표현이라고 탓할지는 몰라도 선악의 개념보다 승패의 개념이 뚜렷한 국민들의 안위를 담보한 무서운 게임이다. 게임에서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사람은 다수의 국민들을 대신해서 선택한 엄청난 패다. 말이 말판을 벗어나서 장외투쟁을 벌인다든지 갈 수 없는 길을 건너뛰면 반칙이다. 그들이 가지는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모두 의정 활동 내에서의 권리일 뿐, 말판 밖으로 나가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훈수를 두는 이들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은 여야 할 것 없이 국민들의 목소리에 경청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국회의원들도 의사당에 불을 밝히고 국익과 민생을 위한 연구를 위해 야근을 하는 모습을 보는 건 기대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의 혈세의 가치만큼이라도 일 좀 했으면 좋겠다. 그 가치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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