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현장실습 폐지도 거론
고교생 현장실습 폐지도 거론
  • 승인 2017.11.29 17: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저임금 어기고 장기간 노동
잇단 비극 발생…대책 무용지물
정치권, 관련 제도 재설계 주문
“특성화고등학교 아이들은 허드렛일을 다 시켜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을 빨리 취업시켜서 조기에 소진한 다음 퇴사시키는 구조죠.”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특성화·마이스터고 현장실습 관련 보고서를 보면 특성화고 교사들은 현장실습 환경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제주에서는 특성화고 졸업반 이민호군이 음료 공장에서 일하다 제품적재기에 목 부위가 끼이는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군은 현장실습생에 불과했지만, 기계 하나를 홀로 맡아 일했고 하루 노동시간이 12시간에 달하는 날도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경기 안산시에서는 폴리우레탄 시트 공장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졸업반 박모군이 공장건물 4층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쳤다. 박군은 투신 전 담임교사와 한 전화통화에서 공장직원과 마찰이 있었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튿날에도 인천 한 식품공장에서 특성화고 실습생이 육절기에 걸린 고기를 빼내려 손을 넣었다가 손가락 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지난 1월에는 한 통신사 콜센터에서 실습하던 특성화고생이 업무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완동물학을 전공한 이 학생은 전공과 무관한 통신사, 그것도 ‘욕 받아 부서’로 불리며 경력자들도 꺼린다는 ‘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했다.

작년 5월에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업체에 현장실습 형태로 취업한 김모군이 구의역에서 홀로 작업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지는 ‘구의역 참사’가 벌어졌다.

2014년 2월에는 울산의 한 자동차부품공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특성화고 실습생이 숨졌다. 사고시각은 오후 10시 19분. 야간노동이 금지된 실습생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때였다.

이처럼 현장실습에 나선 특성화·마이스터고 학생이 부당노동에 시달리다 목숨까지 잃는 일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교육부 실태점검 결과에 따르면 현재 올해 2월 1일 현재 특성화고생 4만4천600여명이 산업체 3만1천400여곳에서 실습 중이다.

이들 현장실습 산업체 중 법상 의무인 표준협약에 따른 현장실습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업체가 238곳, 정해진 근무시간을 초과해 일하게 한 업체가 95곳, 실습생을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위험한 업무에 내몬 업체는 각각 45곳과 43곳,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업체는 27곳, 성희롱 발생업체 등은 17곳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산업체와 관계에서 ‘을’일 수밖에 없는 특성화고들이 파악해 교육부 시스템에 입력한 것이어서 실태를 축소해 보여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2016년 4분기 현장실습 산업체 155곳을 감독한 결과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거나 연장·연차수당을 안 준 곳이 22곳으로 14.2%에 달해 교육부 실태점검 결과와 비교해 그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특성화고생 실습환경이 나쁘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11년 전인 2006년 발간된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를 봐도 ‘2004년 교육고용패널자료’를 분석했을 때 당시 최저임금인 시간당 2천259원을 못 받는 실습생은 49.9%, 하루평균 노동시간이 8시간을 넘어가는 실습생이 50.2%였다.

정부대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12년 4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 2013년 8월 ‘학생안전과 학습중심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8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 후 첫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도 직업계고 현장실습제 개선방안이 논의됐다.

당시 정부는 현장실습을 ‘취업’ 중심이 아닌 ‘학습’ 위주로 바꾸겠다며 실습 기간을 줄이고 실습생 신분도 ‘학생이자 근로자’가 아닌 ‘학생’으로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복되는 정부 대책에도 실제 현장실습 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제는 ‘현장실습 폐지’까지 거론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에서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제에 대해 폐지에 준하는 전면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면서 제도 재설계를 주문했다.

연합뉴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