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면 아이가 금방 잠들어요
책을 펴면 아이가 금방 잠들어요
  • 승인 2017.11.21 1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동규 (아동문학가)



11월 15일 포항지역에 진도 5.4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되었다.

필자는 대학입학예비고사 1회이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갑자기 대학입학예비고사 시험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매우 당황하였었다. 시험은 1968년 12월 19일 실시되었다. 대학입학 정원의 120%를 합격권으로 하였다. 그 시험의 결과는 대학의 쏠림현상으로 많은 대학이 미달 사태를 빚었다. 특히 지방대학과 중하위급 대학의 미달사태는 심각했다.

여러 해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대학입학예비고사는 명칭도 여러 번 바뀌고 방법도 우왕좌왕하면서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이번 시험일자의 연기는 천재지변인데 어쩌랴! 그렇지만 수험생들에겐 일희일비의 나날이 될 텐데….

옛날 과거시험에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은 연암 박지원이다. 다만 그는 당쟁이 싫었고 사회가 혼탁한 것이 싫어서 출세를 포기하려고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 것이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정조는 문체반정으로 연암에게 열하일기에 대하여 속죄하라고 명령까지 하였다.

그러한 연암도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글을 읽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글 읽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도 글을 읽으면, 부모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아아! 그런데 나는 어찌 그리 읽기를 싫어했던가?’고 회고한 적이 있었다.

정조 시대 실학자의 전형인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하여튼 공부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싫음’의 전염병일 런지도 모른다,

연암이 살던 시대 장한종이 지은 ‘조선해학 어수록’에는 ‘개책아면(開冊兒眠)’의 글이 있다. ‘책을 펴면 아이는 금방 잠든다.’는 뜻의 해학적 이야기이다.

어떤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다. 그 갓난아이는 밤낮으로 보채며 울기만 했다. 며느리는 신랑이 평소 읽던 책을 가지고 와서 아이 옆에 펴 놓았다. 그리고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이상하게 여긴 시어머니가 궁금해서 그 까닭을 물었다.

“이 아이의 애비가 평소에 잠이 잘 오지 않으면 이 책을 펼칩니다. 그저 이 책을 펼치기만 해도 애비는 쿨쿨 잠이 들어 버린답니다.”

“그렇지만 애비는 책의 내용을 알고 읽지만, 이 아이는 어찌 네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뜻도 모르면서 좋아하겠느냐?”

시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갓난아기는 책을 펼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시어머니는 시큰둥하니 말을 잊은 채 뒷짐을 지고 그 방을 나서고 말았다. 그러자 며느리는 “어머님은 사리도 모르시면서 엉뚱한 소리만 하고 가시네.”하고 혼자 투덜거렸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길 줄도 몰랐다. ‘신소리’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장자는 생각 없이 하는 말을 ‘치언(?言)’이라 하였다. 마음에서 숙성되지 않는 말, 일정한 규칙이 없는 말,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말을 치언이라 했다. ‘신소리’는 장자가 말하는 ‘치언’에 가까운 소리이다. ‘가라사대(曰)로 시작하는 명심보감, 소학, 논어 등은 교훈을 서술적으로 표현한 문장들의 글이다. 딱딱하고 재미가 없으며 내용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흥미를 일으키기 어렵다.

‘맹자’는 논증, 학설, 비유들이 많다. 검증이 필요한 관계로 선비나 학자들의 전유물이 되기 십상팔구이다. 역시 어렵고 실천하기 힘들다. 반면 장자는 ‘소요유’에서 철학적 견해를 보이면서 치언(?言), 중언(重言), 우언(寓言)을 번갈아 사용하였다. 이 삼언(三言)의 사용으로 천지를 아울려서 안과 바깥이 상통하도록 하였다.

치언은 진실과는 거짓이 구별되는 말이다. 즉 진실을 골라내면 거짓은 익살스럽다. 그러므로 익살스런 거짓은 누구에게나 웃음을 주는 해학이 된다.

중언(重言)은 권위 있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들어도 옳고 그름의 언쟁을 그치게 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덕망 있는 연장자의 말을 인용하였다. 우언(寓言)은 가상의 의인화이다. 소요유(逍遙遊)에 ‘바다의 곤이 하늘로 올라 대붕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험생들에게. 시험 당일만은 책을 펴면 아이처럼 금방 잠드는 날이 아니기를 빌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