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아이들의 미소
학교 밖 아이들의 미소
  • 승인 2017.12.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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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국내에 설립돼 있는 대안학교 수는 240개이지만, 비인가형 학교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600여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많은 기관들이 설립되어 있고, 위탁형, 예술학교형 등의 형태별로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교육기관들이 전국에 포진하고 있다.

대체로 대안학교라고 하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안으로 선택해서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려진 대안학교나 대안형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입학도 쉽지 않다. 지방별로는 해당 지역의 연고를 둔 학생들을 우선 선발하는 특혜를 주기도 한다. 나머지는 모두 전국에서 입학생을 공개모집하고 있다. 재정상의 이유로 수용인원도 소규모다 보니 경쟁률도 꽤 높은 편이다. 정규교육기관, 즉 일반 학교 대신 대안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우선 일반학교로 인해서 피해를 보았거나, 학교폭력 등의 가해자로 오갈 곳이 없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고, 종교적인 문제로 특별한 곳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다.

‘특별’한 아이들은 있지만, ‘특수’한 아이들은 없다.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특수학교라고 한다. ‘특수’의 어감이 우호적이지 않은 것은, 특정한 아이들을 지정해서 모아놓았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다수의 아이들을 ‘일반’이라 칭한다면 소수의 아이들은 ‘특별’하게 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호칭은 재학생들과 학부모님의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대개 일반학교는 OO초중고등 학교라고 정하지만, 특수학교는 OO학교라고 교명을 정한다. 특수학교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망라한다. 왜 일반적인 교명을 붙일 수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서울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설립과 관련해서 학부모와 지역주민들 간의 마찰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실태 조사 자료에 의하면 주변 부동산가격은 설립 전보다 오히려 상승했고, 주변 제반 교육 여건도 좋아졌음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서 보여줬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청회에서도 주민들의 극한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한 소녀가 있다. 환하게 웃으며, 예쁜 인형과 편지지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열세 살짜리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일반학교도 특수학교도 다니지 않는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외국인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왕따로 인한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다가 결국 그곳을 그만두고 말았다. 어지간한 대학등록금에 버금갈 만큼 수업료도 현격하게 비싼 곳이고, 교육여건도 해외학교와 결연을 맺어 조기유학을 가기도 용이한 곳이어서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쉽게 보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수는 매우 적다. 초등 과정에 해당되는 학생들 수는 열 명에도 못 미친다. 상식적으로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이 오붓하게 잘 지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그 몇 안 되는 아이들로부터 받은 소외감은 가히 어른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절박하다. 선생님들도 거의 학생들과 밀접한 상황이어서 이 소녀를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할 만큼 한 듯한데, 이 소녀는 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소녀는 사회적인 법규에 준하는 학교의 교칙과 부모님들의 말씀이라면 어느 하나 어길 줄을 몰랐다. 이 소녀의 잘못이라면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것 말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소녀가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잃어버린 건 환한 웃음이었다. 선천적으로 치아가 고르지 못한 탓에 그렇지 않아도 웃을 때마다 입을 가리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어른들을 배려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결별로 어릴 때부터 혼자서 모든 일을 챙겨야 했고, 외로움을 이겨내야 했던 아이가 어머니와 오랜 공백 끝에 함께 살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와 마주보고 소리 내서 웃을 수 있어서 좋았고, 음식 투정도 가끔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곁에 있어서 마냥 좋았다. 소녀를 외롭고 힘들게 했던 학교 따위에는 미련도 없었다. 그런 열 세 살짜리 소녀가 얼마 전부터 어머니 앞에서도 미소를 지을 뿐, 웃음을 잃어 버렸다.

지난여름, 어머니를 따라나선 자리에서 만난 언론인, 학계인사와 식사할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를 빤히 보던 언론인이 “너, 이가 왜 그래? 너무 이상한데?”라고 말했다. 순간 소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소리 내서 웃는 법을 잊어 버렸다. 가족들 앞에서 곧잘 아나운서처럼 말도 잘하고, 연예인들의 성대모사도 곧잘 하던 소녀가 생각 없는 어른의 한 마디 때문에 웃지도 않았고, 오히려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언행인가. 소녀의 치아가 그리도 걱정된다면 어머니에게 나중에 얘기하든지, 왜 특수한 아이 취급을 해서 아이의 웃음을 앗아가 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 특별한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학교 밖의 특별하고 소중한 아이들을 우리가 사랑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시 이들의 밝은 웃음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고, 밝은 세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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