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의 반전
구멍의 반전
  • 승인 2017.12.04 21: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순란 주부
금요일 저녁, 홍희는 고1 아들의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중2까지 2학기말 쯤되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주요 내용은 장난을 많이 치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 못한다는 내용이다.

1학기에는 밝고 착하다고 말씀하시는데 2학기부터 아이의 마음이 풀리고 적응이 되면서 밝음이 지나친 듯하다. 중3이 되어서는 다행히 전화가 오지 않았다. 자신도 중3의 중요성을 알고 공부에 더 집중하고, 학습태도도 좋아져서 선생님께 상점을 받았다고 스스로 자랑을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내신성적이 대입과 연결되어 있어 매학년 성적과 학교생활이 중요하기에 고등학생부터는 더욱 학습태도와 공부에 몰입하기를 당부했다. 자신도 고등학교의 중요성을 알아서인지 9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을 하고도, 11시까지 심화자율학습을 신청했다. 아빠도 11시까지 공부하는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학교까지 데리러 가서 무거운 가방을 자신이 대신 짊어지고 돌아왔다.

아들의 성적은 조금씩 향상되었다. 아들의 목소리도 커졌고, 웃음도 많아졌다. 학교에서 열리는 탁구대회도 잘해보겠다며 연습상대가 되어 달라고 하고, 수학골든벨도 한다고 책을 읽곤했다. 2학기 중간고사가 한 달 남았다며 준비를 해야된다고 했다. 아들이 중학교에 비해 학교생활을 잘해나가고 있다고 안심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홍희는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왜 2학기말쯤 되면 전화가 오도록 행동하는 것일까? 아들이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났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우선 화가 가슴과 뇌를 지배했다. 아들은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 옆에 있었던지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과 선생님의 부당성에 대해 문자를 했다. 홍희는 띵한 머리에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웃으며 다시 한번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아니며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심하다고 했다. 홍희는 그 때도 아무말도 하기가 어려웠다. 믿음이 실망으로 바뀌어 가슴과 머리에 화가 가득찼기 때문이다.

자신의 화가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아 대화를 기피하고, 다음날 도서관에 도서반납을 하러 갔다. 청소년 이해에 관련된 책을 검색하다가 자신이 찾는 적절한 책이 없어 책장을 둘러보다가 재미난 제목의 과학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사물에 있는 구멍의 과학적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은 군대의 필수품이 된, 어릴 때 먹던 건빵에 구멍이 두 개 있다. 건빵에는 구멍이 두 개 있다.

건빵은 빵굽기를 시작해 처음 10~15분 동안 주변 온도가 올라가면서 수증기압이 증가하여 반죽이 부푼다. 이때 수증기의 압력이 너무 높아지면 과자가 터져 버리기 때문에 구멍이 나 있다.

적당한 수의 구멍을 뚫어 수증기를 살살 빼내어 수증기의 압력을 낮추는 것이다. 방패연에도 구멍이 있다. 연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이 필요하다. 바람의 저항을 그 원동력으로 한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세면 연이 그 저항을 이기지 못해 연이 찢어진다.

연에 구멍을 뚫는 이유는 강한 바람을 받아도 바람이 잘 빠지게 돼 있어 웬만큼 강한 바람에도 연이 찢어지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방구멍은 바람의 조절자다.

그 책을 읽으면서 홍희는 자신의 가슴과 머리에 꽉 찬 아들에 대한 감정에 구멍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멍이 있다하면 보통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댐에 구멍이 생기면 댐이 무너지고, 창호지문에 구멍이 생기면 겨울날 찬바람이 매섭고, 경제에도 구멍이 생기면 적자가 생긴다. 그래서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의를 한다.

그런데 그런 구멍도 필요한 상황이 있는 것이다. 구멍이 있어야 건빵이 터지는 것을 막고, 방패연이 높이 날 수 있다. 아들도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계속 공부와 성적에 대한 압박만 받아 지금 구멍을 뚫어줄 시기가 된 것 같다.

엄마에게도 아들에게도 구멍이 필요하다. 더 멀리, 더 높이 잘 날기 위해서는 말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