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망년회(望年會)와 주도유단(酒道有段)
<대구논단>망년회(望年會)와 주도유단(酒道有段)
  • 승인 2009.12.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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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흥(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이때쯤이면 사람들마다 올 한 해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친구들이나 동료들끼리 한해를 마무리 하거나, 한 살 먹는 나이를 아쉬워하며 모인다. 개인의 차는 있겠지만 보통 개인당 5~10개 정도 모임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술이 동반하게 된다.

한해를 아쉬워하며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과음을 하게 마련이다. 다음날도 아픈 속을 달래며,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최근 유명해진 `롤러코스트-남녀탐구생활’이라는 텔레비전 주제에서 이야기 하듯, 자기 스스로에게 `이것은 사회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떠할 수 없는 일’이라 자조하면서 오늘도 연일 달린다.

그런데 술꾼들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국가에서 금지하면 어떻게 될까? 요즘이야 불가능하지만 조선시대 술의 주원료가 되는 쌀과 보리 등 곡물의 낭비를 막는다는 의미에서 금주령(禁酒令)을 내린 경우가 종종 있다. 흉년 시 술을 만들기 위해 곡물을 낭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 3가지 금지 정책으로 주금(酒禁), 송금(松禁) 우금(牛禁)이 라는 정책이 있었다.

곡식을 낭비하는 술의 주조를 금지,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드는 재료인 소나무의 벌채 금지, 농사에 중요한 소를 잡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이다. 그 중 금주령은 약간의 예외적 조치는 있어서 약으로 사용되는 것, 부모 형제의 전송, 시장에서 생계를 위하여 막걸리를 파는 것은 허용되기도 한다.

그 외 사용은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이러한 금지 조치의 단속 과정에서 걸려드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흔히 “청주를 마신 사람은 걸려들지 않고, 탁주를 마신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특권층은 있기 마련이어서 양반 관료층은 금주령에 상관없이 술을 마셨다.

술에 대한 유명한 글 중의 하나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주도유단(酒道有段)이다. 그는 `술은 인정이라’고 하면서 주도를 9급에서 9단까지 분류하였다. 그 사람의 술버릇(주정)을 보면 인품과 직업은 물론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술에는 교양이 있으며, 많이 안다고 교양이 높은 것은 아니며, 말이 많다고 하여 주격(酒格)이 높아지지 않는다. 주도에는 법이 있는데 술을 마신 연륜, 친구, 술을 마신 기회, 술을 마신 동기, 술버릇 등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지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9급은 불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지는 않으나 안 먹는 사람, 8급은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겁내는 사람, 7급은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6급은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급은 상주(商酒) - 마실 줄도 알고 좋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4급은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3급은 수주(睡酒) - 잠이 안 와서 마시는 사람, 2급은 반주(飯酒) - 밥맛을 돕기 위해서 마시는 사람, 1급은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酒卒)이다.

초단은 애주(愛酒) -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酒從), 2단은 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 3단은 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酒豪), 4단은 폭주(暴酒) - 주도(酒道)를 수련하는 사람(酒狂), 5단은 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酒仙),

6단은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酒賢), 7단은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酒聖), 8단은 관주(關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마실 수 없는 사람(酒宗), 9단은 폐주(廢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涅槃酒)이라고 하였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이신지... 혹시 단이 높다고 자랑 하시지는 않는지... 단이 높을수록 죽음에 가까운 사람이다. 술은 분명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때 생각해 볼 문제는 술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는 없으며, 스스로 단을 높일 필요도 없다.

최근 각종 망년회 방식이 연극이나 영화 관람, 자선바자회, 운동 등으로 변화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올해 망년회는 망년회(忘年會)가 아닌 망년회(望年會)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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