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남용, 도가 지나치다
외국어 남용, 도가 지나치다
  • 승인 2017.12.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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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사정을 알기 위해 가장 흔히 접하는 매체가 TV와 신문 등의 뉴스일 것이다. 그런데 뉴스를 듣다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가 자주 등장해 곤란을 겪을 때가 많다.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려운 외국어를 용어 설명이나 풀이도 없이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일이라도 영어를 사용하면 품격이 높아지는 것처럼 외국어를 남용하는 일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들리기 시작하던 펀드멘탈, 그린푸드존, 아너소사이어티, 카쉐어링, 뉴스테이, 하우스푸어 등 애매모호한 말이 정부 기관이 추진하는 정책 등에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크라우드 펀딩은 대체 무슨 말인지, 누구를 위해, 어느 분야에 해당되는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코미디나 오락 프로그램 역시 현재의 시대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반영하고 풍자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등으로 자주 시청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매우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니, 줄임말 등 뜻을 알 수 없는 표기와 자막이 지나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나 기관, 언론 등이 앞장서서 그런 현상을 보이니, 국민들 역시 그 흐름에 자연스레 따라가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전에 아흔을 전후한 부모님이 재건축 아파트로 입주를 하셨다. 몇 손가락에 드는 건설회사에서 지은 아파트여서 그런지 겉모양이 아주 세련되고 튼실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협요소로 떠오른 지진에 대비한 내진설계까지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든든하다. 더불어 내부 설비 등이 모두 최신 전자 장비들로 갖추어져 어르신들이 사용하기에 불편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차차 적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자주 찾게 될 공간에 큼직하게 붙여진 팻말은 참으로 보기에 거북하다. ‘시니어 하우스’라는 표현은, 과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지. 어르신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노인정’이나 ‘경로당’ 또는 ‘어르신 쉼터’ 등 듣기 편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기를 하면 새 아파트에 흠집이라도 생긴다는 뜻일까?

같은 맥락으로 근년 들어 새로 생기는 아파트 중 우리말 이름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캐슬이니 파크, 더샵, 자이, 힐스테이트, 스카이, 센트럴, 파라곤, 리버사이드 등 외국어 사용은 당연한 것처럼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로 붙여졌던 아파트 이름까지 외국어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니 ‘노인들이 쉽게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최근 정부 관료가 발표한 정책 설명에 ‘포괄적 네거티브’와 ‘규제 샌드박스’라는 내용이 있다. 누구를 위한 표현일까. 외국어도 아니고, 우리말도 아닌 어정쩡한 단어. 저들만이 알 수 있는 이해하기 힘든 용어가 버젓이 정책의 핵심 내용으로 전달되다니,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혹자는 영어 표기가 훨씬 이해가 쉽고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것이지,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변명은 아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를 인식한다면, 감히 그런 발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세계화로 나가는 마당에 외국어를 공부하고, 사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와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 보다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국제적인 대화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이목을 넓히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이나 단체, 언론 등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적인 정책이나 자료에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과는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용어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수준을 높여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몇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여 쉽게 고쳐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의 힘은 어떤지 궁금하다. 부디 기사를 쓰거나 방송 원고를 작성할 때,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서 사용해 줄 의향은 없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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