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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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1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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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사회부장)



한 자치단체가 마련한 행사의 식순. 시장의 기념식사, 시의회 의장의 기념사, 국회의원과 구청장의 내빈 축사까지 일정표에 잡혀 있는 시간이 정확히 20분이다. 이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 애국가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까지 다 포함한다면 30분 정도 될 듯 하다. 요즘 길게 인사말하는 사람 잘 없고 국민의례를 생략하는 경우도 많지만 예측을 넘어서는 사람은 어딘가에 있게 마련이다.

지역의 모 단체가 스위스인들을 초청한 행사에 간 적이 있다. 모 구청의 손바닥 만한 작은 방에서 행사가 열렸다. 시작에 앞서 한국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 멘트가 방송으로 나오자 그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봤다. 요즘 말로 ‘뭐지’하는 느낌. 그들의 얼굴에 번지는 묘한 표정변화에 필자 역시 약간 당황. 한국에 처음 온 그들이 한국말을 몰라서 그랬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문화가 글로벌 문화에는 안 맞는 것 아니냐는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몇년전 인권단체들이 “일본 ‘황국신민서사’와 비슷한 내용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도록 강요하고 경례를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국가주의적 발상”이라며 “다문화 사회로 넘어가는 현실에서 이런 조항은 배타적 민족주의, 이기적 국가주의를 키울 뿐이며 그것은 곧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가 다 맞는 것은 아닌데 누군가 “한국과 미국에만 이런 충성맹세가 있다”고 글을 올렸다. 그런데 미국과 우리의 충성맹세 내용이 다르다고 한다. 미국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의 수호’ 또는 ‘공화국 수호 맹세’에 가깝다는 것. 자유를 제한하거나 정의를 짓밟으면 절대로 안 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정의를 보장하는 공화국(republic)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켜야한다는 것이 ‘Pledge of Allegiance’에 담겨 있는 뜻이라고. 미국의 충성맹세에는 국가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한국의 충성맹세에는 사람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다르다는 해설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하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본 외국인에게 느낌을 물어봤다. 프랑스 국적의 그는 “애국을 강요하는 군대식 문화에 저항감을 느꼈다”고 했다. 맹세 뿐만아니라 행사 때마다 자리에 앉은 평민들이 높은 분들이 하는 ‘이 행사의 각별한 의미’를 가만히 들어야 하는 것도 일제 잔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가적, 또 지방자치단체의 큰 행사에 국민의례가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8월 중앙행정기관이 하는 국민의례를 지방자치단체나 각급학교가 굳이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대통령 훈령을 개정했다. 법체계상 중앙기관에 귀속되는 사항을 지방에 요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라고 한다. 지역 모 섬유관련 기관 근무자는 행사를 할 때 자리배치를 잘 못하면 큰 일이 난다고 했다.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자칫 인사말을 할 기회라도 주지 않으면 비서로부터 항의 전화가 오고 부지불식간에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프랑스학교에는 교장선생님의 조회도 없다. 그들의 애국심이 한국보다 덜할까. 가진 사람들이 탈세를 더 많이 하고 군수비리가 더 많다는 얘기는 들어본적 없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어떤 틀에 눌려 있는 건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길게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초딩 중딩들은 ㅎㅇ가 인사다. 가나다라도 아니고 ㄱㄴㄷㄹ로 (문자)대화를 한다. 언어는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돼있다. 어른들까지 애들을 따라 ㅇㅋ 하지 않는가. 30분짜리 뉴스데스크를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뉴스만 보고 앉아 있기 억울할 정도로 너무나 볼 것이 널렸다. 모두가 핵심에 바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어떤 토론회는 높은 분 기다리느라 10분 허비하고 인사말 듣느라 20분 사용한다. 정작 토론은 1시간 남짓. 상당수 토론회에서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니 패널 여러분은 내용을 5분 정도로 줄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많이 듣는다. 토론을 하는 이유는 찬반 양측이 충분한 주장을 펼치고 제 3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가 아닌가. 발제자가 원고를 읽고 패널이 자기 말만 잠깐 하고 끝나는 토론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적 합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본론이 사라진 토론회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뿐이다. 잘못된 토론문화는 결론을 짜놓고 일방적 주장만 하거나 판을 엎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민주주의의 기초는 무너진다.

2018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정치판이 벌어지면 각종행사장을 찾는 정치인이 많을 터다. 과거의 사고에 젖어 있지 않고 이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정치인을 보고싶다. 실력있는 정치인이라면 돈 많이 따와서 길 놓았다고 자랑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본론을 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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