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새벽을 보았다
빈 소라껍질 속처럼 텅 빈 골목으로
외투 걸친 바람이 불고
늦은 밤 비틀거리던 발자국이 그냥 그 자리에
고요하다
낮은 담장을 따라 국화꽃 한 무더기
소름 돋우는 찬바람에 향기를 지르고
산책길 나서는
한 마리 나비가 수천 번의 날갯짓에
새벽을 깨우려 한다
아직은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 시간
공허한 울림이 있는 퍼런 골목길에
이제는
낡은 자동차의 시동소리가 들릴 듯도 한데
나조차
적막한 골목길에 마음을 던져 놓고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이 새벽을
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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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출생.『문학시대』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수천 번의 날갯짓에 새벽을 깨우는 시간」(2003) 등이 있음.
이 시는 첫 행에 시인이 `몰래 새벽을 보았다’고 한다. 새벽은 새벽길에 나선 사람만이 만날 수 있다. `텅 빈 골목으로 / 외투 걸친 바람이 불고’ 있는 새벽은 언제 어디서나 고요하다. 물론 `아직은 아무도 일어서지 않는’ `공허한 울림’의 `적막한 골목길’ 의 새벽은 하루를 열어가는 `낡은 자동차의 시동소리’ 가 있을 법하다. 거듭 분명한 것은 시인의 말대로 몰래 새벽을 보는 자만이 새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일기(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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