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사 돌확에 약수가 얼었다
파란 바가지 하나 엎어져
약수와 꽝꽝 얼어붙었다
북풍이 밤 세워 예불 드릴 때
물과 바가지는 서로에게 파고들었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꽉 잡고 놓지 않았겠지
엎어져 붙었다는 건
오지 말아야할 길을 왔다는 뜻, 그러나
부처가 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이 결빙의 묵언수행을
지난밤이라 부른다
내가 잃어버린 지난밤들은
어디로 가서 철 지난 외투가 되었을까
돌확이 넘치도록 부어오른 얼음장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의 발등을 닮았다
봄이여, 한 백 년 쯤 늦게 오시라
차갑고도 뜨거운 화두에 거꾸로 맺힌 저 대웅전
파란 바가지 한 채의 동안거가
절절 깊다
고요가 가슴이라면 미어터지는 중이다
◇사윤수=영남대학교 철학과 졸업
<현대시학> 등단, 시집 <파온> 출간
<해설> 어느 덧 습관이 된 꾹꾹 누르는 마음들, 별별 표정이 담긴 사진들이 흘러온 시간만큼 자연스럽다. 오늘처럼 이렇게 추운 날 아니면 눈 오는 날, 그것도 아니면 감춰진 생각들이 고개 쳐든 날. 언제나 일상이었던 것이 멀게 느껴질 때 더욱 간절하고 고맙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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