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아래 가로 놓인 것은 막기 어렵다(難塞鼻下橫)
코 아래 가로 놓인 것은 막기 어렵다(難塞鼻下橫)
  • 승인 2017.12.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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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육 논 단
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필자가 살던 시골 집성촌에서 종손인 할아버지는 서당 훈장을 하였다. 살을 에는 추위가 다가오는 동지 가까이 되면 할아버지는 학동들에게 한 해의 마지막점검을 하였다. 그리곤 주사로 갈아 만든 붉은 색을 붓에 묻혀서는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글씨로 평가하였다. 대부분의 학동들은 ‘통’이상의 성적을 받았다. 그러면 책거리로 이어졌다.

덕담은 학동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명심보감의 구절을 읊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영색무저항(寧塞無底缸) 난색비하횡(難塞鼻下橫)’이었다. ‘차라리 밑 빠진 항아리는 막을지언정, 코 아래 가로 놓인 것을 막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코 아래’라는 비하(鼻下)는 입을 말한다.

어떤 경우든지 ‘마음을 살펴서 내뱉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자’는 의미이리라.

그 당시의 시골에는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는 많은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배가 알맞게 부른 예쁜 항아리는 성주단지로 쓰였고, 큰 항아리는 된장독, 고추장 독, 장아찌 독 등으로 다양하게 쓰였다. 작은 항아리는 앞줄에 세우고 조금씩 담는 것으로 쓰였다.

더러는 항아리에 음식이 있으면 새끼에 숯이나 고추를 단 금줄을 쳐 두기도 하였다. 성주단지 앞에는 소반이 있고 정화수를 떠 놓았었다.

깨어진 항아리나 독들도 장독대 옆에 두고 보관했었다. 그러다가 조금 금이 가거나 밑 빠진 항아리는 필요에 따라 고쳐서 쓰기도 했다. 훈장인 할아버지는 장독대 부근의 밑 빠진 독들의 풍경을 이야기 하였고, 학동들에게는 마음을 살피는 ‘성심(省心)’에 대한 훈도(薰陶)를 했었다.

필자가 교직에 들어서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머리에 떠 오른 것은 한참 훗날이었다. 학급의 학생 수는 많고 생활지도는 어려웠었다. 그저 학생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체벌을 했었다. 물론 만나는 학부모마다 ‘우리 아이 때려서라도 인간 만들어 주세요’한다는 빌미를 핑계로 삼았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주고(憐兒多與棒), 미운 아이는 밥 많이 주라(憎兒多與食)’는 말을 위안삼아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었었다.

아이들은 독이었다. 장독대에 있는 큰 독, 작은 독, 깨어진 독, 엎어놓은 독, 기울어진 독, 금이 간 독, 가득찬 독, 반만 찬 독, 빈 독들이었다. 아이들은 장독대의 여러 독처럼 다양한 개성과 소질을 지닌 독들이었다.

엎어놓은 독처럼 말문을 닫아버린 아이, 삐딱하게 누워 있는 독처럼 말썽꾸러기 아이, 큰 독과 같은 영재 아이,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은 아이들, 아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독들이었다.

원래 질그릇을 구울 때는 김을 쐬면서 굽는다. 그렇게 굽는 것이 훈도(薰陶)다. 질그릇을 만들 듯 오직 덕을 베풀어 사람의 인성이나 도덕심을 길러서 착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훈도(薰陶)다. 그 땐 할아버지의 덕담을 몰랐었다.

그저 ‘순(純)통(通)약(略)조(粗)불(不)’처럼 ‘수(秀)우(優)미(美)양(良)가(可)’의 평가와 ‘가나다’의 평가가 전부인줄 알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었고, 훌륭한 교사인줄만 알았다.

장자가 말했듯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써서 무궁한 변화에 순응하고, 사람들이 존중하는 옛사람의 말을 써서 진실이라 믿게 하며….’그렇게 자신을 위장하였던 듯하다.

코 아래 가로 놓인 입을 막기가 어렵다면 지극하게 신의를 지키는 방법이 제일이다. ‘신급돈어(信及豚魚)’라는 말이 있다. ‘진실한 믿음은 돼지와 물고기에게 까지도 미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주역의 ‘풍택중부(風澤中孚)’에 나온다.

풍택(風澤)은 바람이 못 위를 부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물은 움직인다.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동심원을 그리게 된다. 그 파문은 또 다른 파문을 만든다.

중부(中孚)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진실한 믿음이다. 지성은 하늘도 감동한다. 파문을 잠재워 고요하게 한다. 무술년(2018) 풍택중부(風澤中孚)는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행운의 괘이다.

입은 어차피 우리 몸에 붙어 있는 것이니 버릴 수 없다면 말을 계속 갈고 다듬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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