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토끼는 ‘절대 강자’입니다”…조각가 이기철 ‘토끼시대’展
“내 마음 속 토끼는 ‘절대 강자’입니다”…조각가 이기철 ‘토끼시대’展
  • 박상협
  • 승인 2017.12.1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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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까지 대구 봉산문화회관
약하지만 강자가 되고픈 작가
공룡같은 토끼로 속내 드러내
디테일2
이기철

어느 햇살 가득한 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동물 중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통념에 찬물을 끼얹는 새로운 발견이 거대한 동굴 속에서 일어난다. 동굴에는 토끼 형상이 그려진 금화들이 거대한 제단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토끼를 우상화했다는 샤먼의 증거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거들은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으며, 증거가 쌓여갈수록 학자들은 고대에는 토끼가 세상을 지배했다는 결론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조각가 이기철의 저서 ‘토끼시대(부제 :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사라진 고대 토끼의 흔적을 발견한 이야기부터 토끼시대, 동물의 위장술, 토끼의 천적, 토끼의 작품 등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했던 고대 토끼의 역사와 그로부터 파생된 지금과는 사뭇 다른 동물들의 생태환경까지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서문에는 고대토끼 시대의 연대기도 첨부해 사실적 토대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조각가 이기철이 지어낸 허구다.

책 ‘토끼시대’를 모티브로 한 이기철의 ‘꿈꾸던 신화의 복원과 실현’전이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흡사 공룡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토끼의 뼈 화석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책 ‘토끼시대’ 1장의 스토리의 핵심을 토끼의 뼈 화석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책 1장은 사라진 고대토끼의 흔적을 발견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책 ‘토끼시대’는 이기철이 그동안 발표했던 토끼와 여우, 거북이, 청상아리 등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했다. 그가 만들었던 다양한 동물 작품들을 하나의 서사 속으로 끌어들이고, 토끼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주인공을 토끼로 설정한 데는 토끼가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서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약자라는 점이 작용했다. 이는 강한 은유다. 작가와 토끼의 동일시이며, 약자인 그가 강자로 살고 싶은 염원의 표출이기도 하다.

“군에서는 고참이고 대학에서는 최고 선배였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나는 ‘무엇을 잘 모르는’ 막내에 불과했다. 늘 약자였고, 초라했다. 마치 내가 강한 동물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굴 속에서 은둔하는 토끼 같았다. 그때부터 강자로써의 토끼나 악상어과의 청상아리 등의 강한 동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약한 동물의 표상인 토끼를 최상위의 강자로 설정해 놓자 이기철은 자신이 만든 스토리에 블랙홀처럼 빨려들어 갔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고대토끼에서 느끼는 대리만족감은 생각보다 컸던 것. 작업이 쌓여갈수록 사회초년생으로써 느꼈던 ‘보편적인 두려움’, ‘꿈과 현실과의 괴리감’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서사는 스토리가 있는 작품에서 왔다. 그는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같은 이야기들을 형상 속에 담으려 했다. 형상과 스토리의 결합은 메시지 전달에 효율적이었다.

토끼 가면을 쓴 고양이나 토끼를 사냥중인 여우, 로마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로마의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를 패러디한 쌍둥이 토끼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공룡시대를 실제로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자료를 통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나 역시 ‘토끼시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나’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의 허구를 진실처럼 전달하고 싶었다.”

책 ‘토끼시대’가 그동안 발표했던 작품들을 ‘토끼시대’라는 서사 속으로 끌어들였다면, 이번 전시는 반대로 책의 내용을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이후에도 책 2장과 3장, 4장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지금부터는 책의 내용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게 될 것이다. 전시도 책 속의 작품과 책의 내용을 토대로 새롭게 만든 작품이 독립적으로 또는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전시는 24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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