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파사현정(破邪顯正)
<데스크 칼럼>파사현정(破邪顯正)
  • 승인 2017.12.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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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부국장)


탈 많았던 정유년(丁酉年)이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도 길게 느껴진 한해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참담한 역사의 한페이지를 쓰게 됐다. 이후 국민들의 부푼 희망속에 지난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핵과 사드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마찰과 원전, 지진 등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해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어느해보다 컸던 것 같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중에 일어난 기자 폭행과 홀대론, 같은 시기 임종석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레이트(UAE) 방문과 관련한 진실공방으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여론마저 양분돼 갈등을 빚고 있다. 연말엔 낚시배 충돌사고에 이어 충북 제천 화재로 인한 대형 참사로 국민들은 더욱 깊은 시름에 빠졌다.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매년 연말이 되면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한다.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고 한다. 응답한 1천 명의 교수 중 340명(34%)이 파사현정을 선택했다.‘파사현정’은 원래 사견(邪見)과 사도(邪道)를 깨고 정법(正法)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며,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불교 삼론종의 근본 교의로, 길장이 지은 ‘삼론현의’(三論玄義)에 나온다. 이제는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 일반의 통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파사현정의 뒤를 이어 ‘해현경장(解弦更張)’이 18.8%의 선택을 받았다. 거문고의 줄을 바꿔 맨다는 뜻으로, 사회 정치적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비유한다. 3위는 16.1%가 선택한 ‘수락석출(水落石出)’이었다. 물이 빠지자 바닥의 돌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직장인들은 다사다망(多事多忙)을 뽑아 개인의 바쁨을, 취업준비생들은 마른 나무와 불기 없는 재를 나타내는 고목사회(枯木死灰)를 선정해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난 속에서 의욕을 잃어가고 힘든 개인의 처지를 표현했다.

최경봉 원광대 교수(국어국문학과)와 최재목 영남대 교수(동양철학과)가 나란히 파사현정을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로 추천했다고 한다. 최경봉 교수는 “사견(邪見)과 사도(邪道)가 정법(正法)을 눌렀던 상황에 시민들은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었으며,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기반이 마련됐다”며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최재목 교수는 “최근 적폐청산의 움직임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까지 나아갔으면 한다”고 새 정부의 개혁이 좀 더 근본적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했다.

파사현정은 18대 대선을 치른 2012년 말에 새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던 말이었다. 이명박 정부 말기 잇따라 터진 비리 의혹을 새 대통령이 밝혀 달라는 기대를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뀌어 5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적폐청산을 근본적으로 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에서 5년 만에 교수들은 다시 ‘파사현정’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시작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대체로 그해 정치권과 권력의 풍속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4년은 시대착오를 꾸짖는 ‘도행역시’로 시작해 옳고 그름을 뒤바꾸는 ‘지록위마’, 어리석고 용렬한 지도자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는 ‘혼용무도’, 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군주민수’로 막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도 벌써 7개월이 흘렀다. 새 정부 출범후 시작된 적폐청산도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를 모두 부정하는 현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선(善)과 악(惡)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출발하는 독단과도 무관하지 않다. 더구나 낡은 적폐를 청산한 자리에 새로운 적폐가 들어서고 있다는 비판 또한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2017년의 사자성어로 ‘내로남불’이 거론되고 있는 현실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정유년 끝자락, 지나온 시간을 반성해 보고 또 다가올 내일에 대한 희망을 생각해 보는 시기다. 2018년에는 우리나라 사회에 ‘파사’와 ‘현정’이 제대로 이루어져 국민 모두가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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