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꽃다발
  • 승인 2017.12.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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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세상 모든 가치는 자기중심 필요와 용도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 같다. 그동안 꽃다발에 대해 나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다. 생화는 이내 시들어 버리니 실용적이지 못한 화려함의 대명사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크나큰 사치라 여겨졌다. 그리고 책을 수십 권 내고도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고 사는 어르신들에 비해 첫 작품집을 내면서 출판기념회를 하고 꽃다발에 둘러싸여 있는 신인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서 내가 더 부끄러웠다. 겸손하지 못한 것만 같고 사치스러운 행사로만 여겨져서. 그래서 축하해주러 간 적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수상자가 되어 시상식장에서 꽃다발을 받아보니, 귀한 시간을 쪼개어 축하 마음을 담아 들고 온 그 마음들이 참으로 높고 귀히 여겨졌다. 내게 축하 꽃다발을 받아본 적 없는 둘레 분들이 내미는 꽃다발은 나를 더 작게 만들고 부끄럽게 했다. 꽃다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합향기는 그들의 넉넉한 인품의 베풂에서 뿜어나는 향기였다. 문자로 보내온 축하 그림말(emoticon) 선물도 고맙다. 장미(GIF) 꽃다발을 살짝 건드리니 그 속에서 꽃다발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들을 모아 둔 사진이다. ‘흠흠, 오다가 줏웠어’ 하며 생쥐가 꽃 한 송이 내미는 이미지도 소박해서 좋았다.

유명 가수 어떤 분의 방송을 들은 적 있다. 그분은 펜들이 ‘어떤 선물이 좋은가?’ 물으면 제발 꽃다발만은 가져오지 말라며 싱싱한 푸성귀를 한 바구니 담아준 펜의 선물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긴 꽃다발 받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한테는 그럴 수도 있겠다. 푸성귀는 둘레에 나눠 줄때도 보편적으로 반길 물건임에 틀림없으니. 나도 그처럼 실용적이지 못한 화려함은 사치라 여겼다. 내 둘레에서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선생님들에게도 축하화분 대신 떡케익이나 과일 상자를 보내며 새로 인연 맺는 학교 선생님들과 나눠먹는 선물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우리 시골집 마당에서 정년퇴임 축하식이나 출판기념 축하식을 해줄 때면 늘 들꽃다발을 준비했다. ‘난 이렇게 소박한 축하를 잘해주고 있다.’고 자위하며 살았다. 한지에 <김현숙 작가, 문예창작지원금 한 턱 내라>는 현수막을 써가서 덴마크 여행 때 안데르센 동상 앞에서 펼쳐 흔들어준 일, 대학원 선생님들 논문 발표회에 작은 화분을 들고 가서 논문 발표한 선생님들의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경의로 축하해주었던 일들. 돌아보면, 실용적인 것의 가치만 높이 여겼다.

비싼 꽃향기 대신 조화를 좋아한 것도 그 한 예다. 우리 시골집 마당에서 남편 퇴임식 할 때 비누 공예 장미 화분 두 개를 준비했는데 3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고 있다. 그 덕에 지금껏, 우리 집에 놀러오는 손님들과 마당에서 결혼식 다시 해보기(remind wedding) 놀이를 즐기는데 그때마다 불사화 비누공예 장미 화분이 들려 나와 화려한 예식장 분위기 돋우기에 한몫을 한다. 신부가 손에 드는 부케도 조화지만 사진 찍어놓고 들여다보면 조화인지 생화인지 표 나지 않아 좋다. 신부 드레스도 배치코트 속치마 위에 흰 비닐식탁보를 두르게 하고 면사포를 윗옷처럼 걸쳐 놓고 사진을 찍으면 화려한 드레스가 된다. 이런 사기도 자주 치다보니 손님들 맞을 때마다 드레스의 화려함도 더 살아난다. 얼마 전, 남편 절친 교장이 퇴직 후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그랬다. 생활용품 가게에서 사온 조화를 꽃다발로 만들어 들고 가 축하해주고 사진 찍고 다시 들고 왔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조화를 남편에게 들려 내가 상을 받는 시상식장에 씩씩하게 참석했다. 남들은 모두 생화를 들고 왔는데 정작 주인공의 남편은 조화를 들고 왔지만 사람들은 그걸 눈치 채지도 못했다. 옛날 초등학교 졸업식 때 부모님은 조화 하나 사 들고 왔다가 형제가 졸업하는 날 해마다 그걸 먼지 털어 다시 들고 가셨는데…. 그에 비하면, 향기 나고 화려한 꽃다발을 한꺼번에 많이 받아보는 이런 축하는 분에 넘치는 호사다.

아픔만큼 성숙한다고 했던가? 왜 사람들이 향기 나는 꽃다발을 들고 몰려다니는지, 꽃다발에 담긴 그 축하의 깊은 마음을 비로소 깨친 탓일까? 아무도 축하하러 오지마라고 매몰차게 내쳤던 둘레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축하해주는 일만 중히 여겼지. 그들이 축하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의 깊이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혼자만의 가치관으로 살아온 것 같다. 또 한 가지, 첫 출판에도 꽃다발을 들고 가는 게 의미 없는 일이 아님을, 오히려 첫 출판은 개인으로서는 더 의미 있는 일임을 새삼 깨치게 되었다. 요즘은 돌잔치도 결혼식만큼 손님들을 초대해 꽃다발에 둘러싸이며 즐겁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이번에 꽃다발을 받으며 동호회 카페에 반성문을 썼다. 부끄럽지만 이번 가르침 받은 대로 실천하겠다고. 오늘은 받은 꽃다발의 향기에 사치스럽게 잠시 젖어보고 이 향기를 반길 여러 곳을 찾아 나선다. 나눔을 향기에서부터 시작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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