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凡事莫怨天)
모든 일에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凡事莫怨天)
  • 승인 2017.12.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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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전 중리초등학교장)


1970년대 초 봉화의 산골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친구가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방학숙제를 아이들이 스스로 할 만큼 계획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무조건 많은 양보다는 개인 능력별로 과제를 조금이라도 실천했다는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떠들면서 방학생활계획서를 작성하였다. 교사 친구는 아이들이 작성한 방학생활계획서를 읽고 평가 후 확인도장을 찍고 되돌려주었다.

그런데 사달이 난 것은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선생님과의 약속이라니? 무슨 방학숙제가 그런 못된 짓 하는 것이 있어!”하고 떠들썩하는 소리가 났다. 교사 친구는 모기장이 붙은 여닫이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학급에서 제일 얌전하던 섭이가 원두막집 아저씨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참외를 들고 서 있었다.

교사 친구는 아이들의 방학숙제를 새삼 떠올렸다. 그렇다. 석이의 방학생활계획서에는 분명히 ‘참외서리하기’가 있었다. 그때 담임교사가 무심코 도장을 찍었더라도 ‘모든 책임은 교사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임교사였던 친구는 그날 원두막집 아저씨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의 행동엔 아무런 잘못은 없고, 오직 교사인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두 손을 모아가며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훌쩍이는 섭이를 부둥켜안았다. 사제가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이쿠나 호랑이’로 동화를 쓴 윤태규 작가가 들려준 실화이다. 중국의 우(禹)임금이 암행순찰을 하다가 서리에게 백성이 잡혀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임금은 그 광경을 보고는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다.

그러다가 갑자기 걸음을 되돌리고는 서리에게 쫓아가서 잡혀가는 백성의 죄를 물었다. 그리곤 ‘백성의 잘못은 임금인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우임금은 서리에게 ‘요순시대의 백성들은 요순의 마음을 닮아서 착한 백성이었다. 과인이 임금이 되니 백성들이 제각기 마음대로 변한 마음을 가지니 과인은 애통하고 진실로 가슴 아프다.’고 설명하고 선처를 바랐다.

전대의 요(堯)임금은 7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순(舜)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순임금은 33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우(禹)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요임금은 왕위를 순에게 선양하면서 ‘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라.(允執厥中)’고 하였고, 순임금 역시 왕위를 우에게 선양하면서 ‘윤집궐중(允執厥中)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순은 우에게 덧붙였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약하다. 부디 한마음 한뜻으로, 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라.’고 하였다.

백성의 잘못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우임금의 가르침은 ‘그 중심(厥中)’이다.

명심보감에 꽃은 졌다 피고, 피었다가 또 진다. 비단옷을 입고 있다가도, 다시 삼베옷으로 바꿔 입는다. 넉넉하고 호화로운 집이라고 해서 반드시 언제나 부귀 하라는 법은 없다. 가난한 집도 반드시 오래 적적하고 쓸쓸하지 않다.

사람이 위로 밀어 올려도 반드시 하늘에 올라간다는 법은 없다. 사람을 아래로 밀어도 반드시 깊은 구렁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범사(凡事)에 막원천(莫怨天)하라. 천의어인(天意於人)에 무후박(無厚薄)이니라.’하였다. ‘모든 일에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 하늘의 뜻은 본시 사람에게 후하고 박함이 없다.’는 뜻이다.

회사의 경영 잘못은 경영자의 책임이고, 학생의 잘못은 교사의 훈도(薰陶)가 엄격하지 않은 데 문제가 있다. 국민이 우왕좌왕 야단법석을 떨고 법질서에 헷갈려하면 정치인의 통솔력이 미약한 탓이고, 집안의 잘못은 어떻든 어른의 부덕한 소치이다. 지금 나라에선 많은 사건들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일의 경중에 관계없이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모름지기 어떤 일을 맡아하거나, 남을 가르치는 일에 잘못이 있으면 자기가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한다. 요리조리 비상구만 찾아가며 탓할 일은 못된다.

일의 결과는 원인에 기인한다. 하늘을 원망할 일이 아니다. 천의무후박(天意無厚薄)이다. 하늘의 뜻은 결코 누구에겐 후하고 누군가엔 박한 것이 아니다. 하늘은 쓸데없는 사람을 내지 않았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았다.

잘못이 있으면 먼저 책임지는 사람이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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