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법이 더 존중되는 사회 : 재판에도 떼법이 통하는 시대
떼법이 더 존중되는 사회 : 재판에도 떼법이 통하는 시대
  • 승인 2017.12.29 10: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진(한국소비자보호원 소송지원 변호사)


인터넷에서 ‘떼법’을 검색하면 ‘법 적용을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억지주장 또는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불법시위를 하는 행위. 이 신조어는 집단 이기주의와 법질서무시의 세태를 보여준다’라고 되어 있다.

강정마을 관련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 해군기지 건설을 확정지었고, 제주도 내 후보지에 관하여는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 강정마을이 지정되면서 본격화된 것으로 진보 및 보수 정권의 합작품이다. 경제군사적 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므로 설치를 강행하려는 정부의 입장과 환경문제, 해당 지역 주민의 재산권제한 문제, 진보세력의 관여 등으로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었고, 급기야는 해당 지역 주민들과 환경운동가 및 일부 외부인들이 실력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 장기간 공사가 지체되었다. 그에 따라 나중에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한 사람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재판부가 정부의 소송취하를 내용으로 하는 강제조정결정을 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 들여 결국 최종적으로는 공사를 방해한 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정부가 포기한 것이 되었다.

각종 형사사건에서 강정마을 공사를 방해한 사람들에 대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유죄가 선고되었고, 반대로 이들의 집회를 막은 경찰의 행위는 적법행위이라고 인정되고 경찰의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강정마을과 관련하여 법원의 주된 판결은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하는 행위는 위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그 방해자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피고들 대부분은 마을 주민들이 아닌 외부인들이다)에서 법원이 취할 태도는 이들의 행위가 위법임을 확인하고, 그 위법에 대한 적절한 손해배상금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위 과정에서 많은 참작 사유가 있다면 피고들의 행위가 위법행위임을 반드시 확인시키고 다만 경제적으로 과중한 부담이 가지않도록 손해배상금을 대폭 감액시키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정부, 정치권과 법원은 각자 하는 일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다. 정부 및 정치권과 달리 손해배상 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은 기본적으로 피고들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정부가 주장하는 손해가 피고들의 행위와 인과관계가 있는지, 정부가 주장하는 손해액이 적정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고 오로지 피고의 입장 또는 바뀐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여 ‘정부의 불법시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현재 및 장래에 전부 포기하고 소송을 취하한다’는 내용으로 강제조정결정을 하는 것은 법률적인 판단을 생명으로 하는 법원의 입장에서는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해당 행위가 불법으로 판단된다면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불법을 확인하고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에서라도 소액이나마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으로 강제조정결정을 할 것이지(장래 정부가 피고들에게 그 책임을 면제시켜주는 것은 법원가 무관한 별개의 문제이다), 법원이 나서서 피고들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면제시켜주는 것은 결국 법원이 교체된 정권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법원 스스로 정치에 관여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법원은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기관은 아니다. 물론 법원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재판 과정에서 적절한 재량을 발휘할 수 있으나 그 재량은 법의 한계 내에서 행하여 져야 할 것인데 이 건 관련 강제조정은 법원이 법의 한계를 넘어선 재량의 행사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 인사 청문회에서 대법원 후보자가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가장 먼저 할 것은 ‘사법부의 기본적인 책무인 재판을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강정마을 강제조정 결정은 재판을 잘 한 것이 아니고 정치를 잘 하는 것으로 보이고, 향후 떼법 가담자들에게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으로 교체된다면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잘못된 암시를 법원이 제공한 것으로 보일 수 있어 매우 염려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