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전사고가 너무 잦다
사회 안전사고가 너무 잦다
  • 승인 2018.01.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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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고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어 국민은 불안하다. 세월호 침몰사건을 두고 몇 년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진상을 밝히겠다고 특위를 구성하는 등 후유증이 만만찮은데 요즘에도 걸핏하면 바다와 육지 그리고 병원에서까지 대형사고가 빈발하고 있어 세월호 참사가 자꾸 연상된다. 세월호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형 사고였고, 이에 대처하는 당국의 수습책도 매우 미진해서 해경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박근혜의 ‘7시간’을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것이 직접 원인은 아니었지만 박근혜정권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가라앉기 시작하여 끝내 최순실 국정농단이 폭로되면서 일약 탄핵과 구속재판이라는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박근혜의 몰락은 이런 예비증세를 간과하고 스스로 오만에 빠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정부는 국가 대소사 모두를 관장하고 책임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우리는 영종도 낚싯배 침몰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 그리고 이화여대 목동병원 신생아 4명의 사망사건을 보며 사회적 파장과 민심의 동향을 주시하게 된다. 이 사건들은 세월호와 달리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처하는 경찰과 소방당국의 대비태세는 잘 갖춰져 있다. 다만 이런 사건사고는 사전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사고가 터졌을 때 가장 완벽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큰 사고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전체가 이에 대비한 준비태세를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이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그들에게만 모든 짐을 떠맡길 수는 없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건사고의 예방을 제일의로 삼는다. 사고가 터진 다음에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까지 동원되어야 한다. 예방이 첫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들어가 보면 사후 뒤처리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색이 나지 않는 예방보다 사후처리에 더 집중하는 당국의 태도는 이른바 성과주의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태도다. 예방은 크게 치하 받을 일이 없지만 사후처리 과정에서는 영웅화도 가능하고 공로 표창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내일과 미래보다 오늘과 현실만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

사회 안전사고 예방운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시켜야 밝고 명랑한 사회 환경이 유지된다. 교육이라고 해서 기성세대가 습득했던 주입식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자연이치에 따라야 효과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교에서의 폭력행위가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채 건성건성 흘러간다. 학교폭력이 가정폭력으로부터 발원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부모끼리의 싸움이 어린 자식들에게는 큰 충격이다. 치고 패지 않는 단순한 말싸움도 미치는 영향은 똑같다. 이런 가정에서 인성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부모들이 제 자식 교육을 소홀히 한 채 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성행할 수 있는 빌미가 되지 않겠는가. 학교폭력의 형태는 갖가지다. 말싸움에서 주먹으로 번지고 패거리를 만들어 만만한 학생을 따돌린다. 비열한 행동이다.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근자에 더욱 활발해지고 많아지는 것은 세태의 흐름을 본받기 때문이다. 전국적 조직을 가진 조폭들이 기업을 경영하고 영화를 통해서 오히려 영웅화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청소년들이 메시지와 카톡을 통해서 디지털 폭력으로 확대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SNS를 통해서 따돌림의 대상으로 선정된 어린 학생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나왔다. 당국이 예방보다 사후처리에 더 관심을 쏟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각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더라도 가정 학교 사회폭력이 일상화한 곳에서는 뚜렷한 주관과 신념으로 이를 바로 잡을 엄두를 내기 어렵다. 정의가 바로 서며 진리만을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은 예방의 지름길이다. 정부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에 이를 때까지는 학습을 전폐하고 인성교육에만 집중해야 한다. 원어민을 불러다가 영어를 교습하는 것은 난센스다. 뛰어놀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저절로 대화의 문이 트인다. 아무리 어려도 자기의 생각이 있기에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선생님들도 함께 웃으며 놀아줘 심성을 곱게 하도록 자연유도를 하는 게 필요하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학부모들이 한 마음으로 사회 안전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다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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