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탓’ 언제까지
‘남의 탓’ 언제까지
  • 승인 2018.01.0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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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다. 자신의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잘못만을 탓한다는 뜻이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린아이들이 야단을 맞지 않으려고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얄팍하고 어리석은 잔꾀를 부리는 행위다. 그것도 한두 번에 그칠 때 귀엽게 봐줄 수 있다. 자주 남의 탓을 하다보면, 양치기소년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국의 움직임을 보면, 매우 지루하고 걱정스러운 일면이 있다. 왜들 저러실까. 어떤 정부라도 새로움을 위해 일정기간 과거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제는 식상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대할 것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또 무엇을 들추어내고, 누구를 탓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정당과 정당 간에 날을 세우고 서로 탓을 하는 것은 아주 오랜 관습이자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역할인 것처럼 인식이 굳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거기다 일부 부처에서 발표한 결과가 가관이다. 마치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책임을 반감시켜달라고 고자질하는 어린아이 같다. 부처의 의견과 정책결정 방향이 달랐으니, 어쩌라는 말인가.

설사 힘의 논리에 의해 굴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하더라도, 그 책임 또한 자신들의 몫이다. 기안부터 검토, 결재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일일이 남의 손을 빌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 부처나 기관의 정책에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정책 방향을 확대 또는 축소하거나 변경할 필요가 생기기도 한다. 여건이 달라졌음에도 무리하게 끌고 간다면 그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탓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스포츠 중계를 하듯 정책결정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발표는 웃을 일 없는 국민들에게 쓴웃음을 안겨주는 일일 뿐이다.

새 정권이 들어선지 1년이 가까운 동안 파헤치기 경쟁이라도 붙은 듯 과거의 잘못을 캐내기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 같은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정부에 거는 기대를 반감시키는 효과만 안겨줄 것이다. 더불어 산적한 현안을 어떻게 슬기롭고 무리하지 않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 지난 일을 뒤돌아보느라 주춤거리는 것은 매우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에, 보는 사람의 입장과 시각이 달라지면 그 모양도 다르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 가정 내에서도 가족 간의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어찌 나라를 움직이는 정책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만 보일 수 있을까.

계속 이렇게 나가다가는 행여 다음 정권에게 책잡히지 않을까 두려워 몸을 사리게 되는 악순환까지 생길 수 있으니, 그 또한 우스운 일이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눈치를 살펴야한다면, 누군들 마음 편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작년 한 해 수출실적이 크게 향상되고, 몇 년 만에 금리가 인상되었으며, 소비자 물가지수가 올라가고, 주가가 몇 차례나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여러 가지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기미를 보인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새해 들어 유류를 비롯해 외식산업, 화장품, 생활용품 등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물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었거나 인상될 것이라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있다. 지표상으로는 높은 성장 결과를 나타내면서도 현장에서 느끼는 실제 생활에 어려움이 크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돌아보는 것도 간과하지 말아야할 일이다.

무술년 새해, 대통령께서는 ‘국민에게 삶이 나아지는’ 해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들의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울 때, 삶은 저절로 나아질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을 화합으로 이끌어가야 할 수레바퀴가 자꾸 뒷걸음질을 한다면,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심을 부풀리는 것은 아닌지. 눈에 보이는 적폐보다 더 큰, 마음에 쌓인 케케묵은 적폐를 청산하고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새해에는 부디 ‘남의 탓’을 일삼는 구태에서 벗어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방식으로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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