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되니 단풍잎 물들듯 /너도 물들고 나도 물들며 /행복도 물들고 즐거움도 물들어간다
따끈 거리는 햇살도 물들고 /들판에 노랗게 익은 나락도 물들며 /길가 풀 섶도 물이 들어간다
파란 하늘도 물들고 /살랑거린 바람도 물들고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에게도 물이 든다
한들거리는 고추잠자리 날개도 물들고 /텃밭을 종횡하는 참새 때도 물이 들며 /초저녁부터 목 터져라 짖어 대는 /복순이 쉰 목도 물이 들어간다
담장 밑 호박잎도 물들고 /장독대 옆 봉숭아꽃도 물들며 /손녀딸 손톱에도 물이 든다
산과 들엔 구절초가 물들고 /여름에 뿌린 메밀밭엔 메밀꽃이 물들며 /시절만난 코스모스 목도 물들었다
시월이 되니 물만 들어간다 /첫사랑이 그리워서 물들고 /내 청춘은 외로워서 물이 들고 /삶에 지친 육신도 서서히 물들며 /내 인생도 세월 앞에 물들어만 간다
◇김기갑 = 전북 고창 출생
고창문인협회원, 신영종합중기 대표
<해설> 작가가 바라 보는 세상은 사람도 자연도 모두 물들어 가는 모습들뿐이다. 약간 동화적인 모습을 띠고 있어 그런지 글속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도 순수하다. 청순했던 과거로부터 쇠퇴해 가는 현재 모습까지 인생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한편의 시에서 우리는 삶의 허무를 생각해 본다. -이재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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