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 처월드
시월드 처월드
  • 승인 2018.01.10 11: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숙(리스토리 결혼정보 대표)


매주 일요일이면 남동생 식구들이 연로하신 부모님 댁에 모여서 아침식사를 한다. 이웃들은 핵가족 시대에 드문 풍경을 보고 효자 자식을 두었다며 우리 부모님을 부러워한다. 딸자식이라는 이유로 나는 가끔씩 초대받은 손님처럼 얼굴을 내민다. 토속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딸의 취향을 아는지라, 맛난 음식이 있으면 엄마는 수시로 부르곤 한다. 다행히 부모님 댁과 십 분 거리에 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새벽 잠결에 엄마의 전화를 받고 친정을 방문했다.

아파트 뒤편 산등성이에서 아버지가 손수 기른 , 상추, 배추, 고추, 가지 등 온갖 채소들이 아침 밥상에 올랐다. 솜씨 좋은 두 올케와 엄마는 갖은 양념을 넣어 채소를 무치기도 하고 데치기도 한다.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뚝배기 된장의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하다.

엄마와 올케가 반찬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부간에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닌 친정엄마와 딸 같다. 각자 큰 사기대접에 갖은 야채를 넣은 비빔밥은 여느 집 잔칫상 보다 더 푸짐하다. 서로 먹으라고 권하는 맛에 정까지 철철 넘친다. 어릴 때부터 밥을 천천히 먹는 딸이 못마땅해서인지 엄마는 어른이 된 딸에게 지금도 잔소리를 한다. “에미야, 밥을 한 숟가락씩 큼직하게 떠서 먹으라이. 밥알을 세듯이 먹으면 복 나간다.” 라며 재촉을 한다.

그리고 친정 엄마의 시집살이 얘기가 오늘 아침 밥상의 화두가 되었다. 옛날에는 밥을 먹을 때 할아버지와 남자들 밥상만 따로 차려드리고 여자들은 부엌 바닥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큰 양푼이에 밥을 비벼 시어머니 손위 동서들과 같이 먹다 보니 막내며느리인 엄마는 늘 불편했다. 금방 시집 온 새댁인지라 조심스러워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항상 밥이 모자라 배가 고팠다. 그래서인지 딸자식이 동서들 많은 곳에 시집가서 밥이라도 굶을까 봐 노파심이 생기셨나 보다. 할머니인 시어머니가 엄해서 가끔씩 며느리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래서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년 시집살이 고추 당추 보다 맵다 했던가. 귀가 있어도 들어서는 안 되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말며 살아야 했다.

엄마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막내며느리로서 시집살이 애환이 느껴진다. 요즘 ‘시월드’라는 말이 유행이다. ‘시월드’는 시댁의 신조어로 시가를 속되게 이른 말이다. 얼마 전에 장가갈 나이가 된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친구의 며느리 얘기였다. 아들이 사업을 실패해서 부모님 댁에 얹혀 같이 살게 되었다. 손자도 보고 싶고 해서 간식거리를 들고 방문을 두드렸더니 며느리가 “어머니 앞으로 노크하지 말고 전화하세요.”라고 했다면서 요즘 젊은 며느리들이 무섭다고 했다. 아들 가진 어머니들끼리 모이면, ‘며느리 모시기’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는 시대라고 한다. 며느리를 딸처럼 대하고, 같이 손잡고 시장도 가고 영화도 보고 그렇게 살고 싶은데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걱정이 된다고 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고부간의 갈등,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으로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해 이혼하는 부부도 가끔 있다. 요즘 시대에도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해 이혼하는 커플도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시댁은 어렵기만 하나보다. OECD 35개국 중 이혼율이 한국이 1위다. 이제는 핵가족 시대다. 자녀도 단출하다. 외동아들, 외동딸도 많다.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는 정말 없을까?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고 사위가 아들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안타깝다. 이제 시집살이라는 단어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여자가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옛말이다. 시월드 시대는 가고 시집살이가 아닌 처가살이 의미로 처월드 시대가 도래한다. 시월드나 처월드나 시집살이 처가살이가 좋을 수만 있겠는가. 오죽하면 ‘살이’라고 했을까. 사위사랑은 장모라 했지만 처가살이로 스트레스 받는 남성들도 많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이혼하는 부부도 있지만, 장모와의 갈등을 견디지 못해 이혼하는 부부도 있다.

외동아들 외동 며느리들이 시부모님과 장인 장모님모시고 한 지붕 밑에 사는 아름다운 동행은 어떨까? 사돈끼리 친구도 하고, 손자 손녀도 번갈아 봐주면 맞벌이 자식들 에게 도움도 된다. 사랑하는 자식과 고슴 도치 같은 손자손녀들을 매일 보면서 살 수 있다면 물질적으로 마음적 으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