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의 변(辨)
빈말의 변(辨)
  • 승인 2018.01.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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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지난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개최되었다. 북한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회담내용을 공개 보도하자고 요구했고, 우리 측은 제한적 보도가 더 좋을 거라고 했다. 언론에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베테랑답게 북한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핵 개발이라는 선전에 이용되지 않았음이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한반도 긴장완화적인 측면에선 고무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일지는 몰라도 우선 한민족이 축제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청와대는 1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2018년도 제3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들의 참가를 위한 지원 사항과 군사회담 개최 방안 관련 후속조치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선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한반도는 더욱 냉전의 분위기가 될 수 있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북한의 핵개발 저지가 목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 고위급회담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크게 기존의 입장과 달라질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리나라는 반도라는 지역적 특성상 역사적인 면을 보더라도 주변국들에게는 국권의 확장과 균형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는 민족의 통일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북측이 보유하고 있는 핵기술은 당연히 힘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북한의 핵만이 위협일까? 다른 나라들의 핵은 안전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핵무기는 지구 어디에도 필요로 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좀 더 무리한 상상을 하자면, 핵무기 관련해서 국제 연합기구가 실무적인 감사를 통해 성역 없는 비핵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타국의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축제를 앞두고 분주한 시점에 비인기 종목의 국제대회는 당국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손님맞이를 하는 국민들의 참여의식이 성패를 좌우함은 자명하다. 올림픽 기간 동안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가 그들의 참여로 인해 해소된 것만 해도 긍정적인 회담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빈말’은 옳지 않다. 대부분 그렇게 인지하고 그렇게 빈말에 대해서 천대를 한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절대적인 선악은 존재할 수 없다. 빈말도 그러하다. 의사가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말도 거짓말이나 빈말이기에 앞서 쾌유를 바라는 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고 용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약속은 빈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북 간의 합의 하에 운영되어온 개성공단과 비록 사기업이 주축이 되었지만, 금강산 관광도 무책임하게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로 인한 손실은 해당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고스란히 정부의 몫이 되었고, 이는 국민의 빚으로 남게 되었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자업자득이다. 우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도 우리를 제외한 미국과 일본 등이 주도하는 현실은 설명되어져서도 안 되고 이해되어져서도 안 된다. 호시탐탐 자국의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일본과 이를 묵시적으로 허용하는 미국이 바라는 것은 결코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연합훈련 반대 등을 주장하는 피 끓는 젊은 날의 구호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미군을 주재시키고 우리의 판단에 의해서 군사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의 바다와 우리의 하늘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이번 남북의 공동보도문에서 북한이 ‘우리민족끼리’라고 표현하고 우리 측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설왕설래하며 각 언론이 해석의 경중을 달리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을 의식한 북한의 의도된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표현자체를 보면 오히려 우리가 비로소 주인 된 느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 민족상잔의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같은 민족끼리 반세기 넘도록 다투고 모함하고 주변국들의 이간질에 얼마나 통일의 염원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걸어 왔는지 그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공단 재개 등의 사업은 이해관계를 넘어서 반드시 챙겨야 할 첫술이어야 한다.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고령이고 생존자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분단이 익숙하거나 편리해져서는 안 될 일이다. 빛바랜 이념논쟁을 멈추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통일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빈말들을 하나씩 실행해가며 약속을 지켜나가야 할 시점이다.

조국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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