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은 다 꽃길이라 믿었던 시절 득음한 꽃들의 아우성에 나도 한 때 꽃을 사모하였다 꽃을 사모하니 저절로 날개가 돋아 꽃 안의 일도 꽃 밖의 일도 두근거리는 중심이 되었다 꽃술과 교감했으므로 날개 접고 앉은 자리가 모두 꽃자리였다
꽃길을 날아다녔으나 꽃술을 품었다고 흉금에 다 아름다운 분粉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겹눈을 가지고도 읽지 못한 꽃독에 날개를 다치고 먼 남쪽 다산에 와서 앉는다 낮달이 다붓하게 따라온다 주전자에는 찻물이 끓고 *
꽃 밖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꽃술을 사모하여 맴돌지는 말아라 오래 전 날개를 다치고 이곳에 먼저 와서 앉았던 사람이 더운 붓끝으로 허공에 쓰고 있다
*정약용의 시‘ 題<蝶圖>’ 에서 인용
<해설> 나비가 꽃을 사모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며 꽃 밖의 일이 두근거리는 중심이 된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시인의 망막이라는 거름망을 거쳐 시적 질감에 도달한 것은 저절로 날개가 돋은 나비와 두근거리는 중심이 된 꽃 밖의 일이라는 심상의 형상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인의 각도기는 360도를 모두 포용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경계 너머의 무엇을 본다는 것은 현상에서 체득한 자기성찰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꽃술을 품었다고 다 아름다운 분粉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는 본문의 언어가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내가 품고 살아온 것은 과연 무엇일지? 다친 나비의 날개를 더듬어 본다. 그곳에 내가 있다 . -김부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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