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명교죄인(名敎罪人)’ 박근혜
[윤덕우 칼럼] ‘명교죄인(名敎罪人)’ 박근혜
  • 승인 2018.01.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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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주필)
‘명교죄인’은 도덕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대역죄인을 의미한다. 탄핵된 박근혜는 지금 명교죄인이 되어가고 있다.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싶어도 구속된 몸이니 하소연조차 할 곳이 없다. 권세를 누리던 측근들은 거의 모두 배신했다. 다들 자기 살겠다고 같이 손가락질하고 고자질하기 바쁘다. 눈치 빠른 권력기관들은 문재인 정권 입맛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해서 전직 대통령 박근혜는 ‘명교죄인’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명교죄인’은 청나라 5대 황제 옹정제가 권력 강화를 위해 당대의 문장가 전명세(錢名世)에게 내린 죽음보다 무서운 형벌이다. 사실 전명세의 죄는 별것이 아니었다. 옹정제도 칭송했던 공신 연갱요(年羹堯)를 칭찬하는 시를 썼다는 것이다.

연갱요는 옹정제의 처남이자 가장 총애 받는 신하였다. 옹정제는 황권이 안정되자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정적제거에 착수했다. 제거 1순위가 연갱요였다. 일단 연갱요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미지 먹칠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옹정제는 연갱요의 과거 행적을 사사건건 문제 삼았다. 적폐청산이다. 황제가 연갱요를 숙청할 기미를 보이자 아첨하는 무리들이 벌떼같이 연갱요의 죄상을 일러바쳤다. 연갱요는 삭탈관직은 물론 평민으로 격하된 뒤 탐욕죄· 횡령죄· 대역죄· 기망죄· 독단 등 모두 8개 죄상, 무려 92개 항목으로 자결하라는 명을 받았다. 이때 함께 숙청된 이가 바로 연갱요의 과거(科擧)동기생 전명세다. 전명세는 연갱요가 옹정제의 골칫덩어리인 티베트 지방을 평정하자 그를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물론 평정소식을 들은 옹정제도 연갱요를 ‘은인’이라며 크게 칭송했다.

그러나 얼마 후 옹정제는 연갱요를 외면했고, 전명세는 과거동기생인 그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옹정제는 이참에 불온한 문인들이나 한족들을 길들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전명세 같은 문장가에게는 천고에 길이 남을 치욕스런 오명을 씌워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옹정제는 고심 끝에 두 가지 색다른 방법을 썼다. 옹정제는 우선 그를 파직한 뒤 친필로 ‘명교죄인(名敎罪人)’이란 글을 하사하고 현판을 만들어 그의 집 대문에 걸게 했다. 명교는 유교의 별칭이다. 명교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유학자 전명세에게 ‘명교죄인’은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죽음, 그 이상의 형벌이었다. 옹정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문장이 뛰어난 관리들에게도 전명세에 대한 비판시문을 짓도록 했다. 옹정제는 이런 풍자시문를 책으로 엮어 전명세에게 판각을 하게 한 뒤, 전국 각 성에 배포하도록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수많은 백성들은 공포에 떨며 오금을 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명교죄인’은 전명세 개인에게만 가해진 형벌이 아니다. 반청복명을 외치는 한족들의 입을 막아 잠재적 저항세력을 궤멸시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 혐의 사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소된 혐의 사실만 당초 13개에서 20개로 늘어났다. 검찰이 밝힌 혐의 사실은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내용이 많다. 듣기 부끄럽고 치사해서 민망할 정도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뇌물(특수활동비)을 받아 기치료나 의상비 등 사적용도로 썼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힌 혐의 내용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뇌물수수·업무상 횡령·제3자 뇌물수수·제3자 뇌물요구 등 완전히 파렴치범으로 낙인찍는 수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장이 ‘명교죄인’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박근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보수세력들이 다함께 ‘명교죄인’이 된다는 점이다. 알게 모르게 국민들에게 보수의 이미지를 도덕적 오명으로 먹칠하고 있다. 부끄러워서 입을 떼기 힘들 정도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수는 1577만표(득표율 51.55%)였다.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옥죄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사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보수의 이미지에 먹칠만 하면 되니까. 이래저래 이 땅의 보수세력들은 입을 떼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보수궤멸이다. 새는 좌우 날개가 온전히 제기능을 할 때, 비로소 잘 날 수 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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