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문 사진전 ‘선탄부’ 내달 4일까지 토마 갤러리
박병문 사진전 ‘선탄부’ 내달 4일까지 토마 갤러리
  • 황인옥
  • 승인 2018.01.1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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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발자취 추적 계기
“자료로 보존하고 싶다”
한국역사박물관서 요청
선탄부-여광부2
박병문 작 ‘여유 있는 시간’.

사진작가 박병문이 지하 막장과 탄광촌을 피사체로 담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그는 1천m 아래 지하 갱도에 들어가 작업 중인 광부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여겼던 고전연료인 석탄 캐는 광부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석탄 한줌을 캐기 위해 극한의 상황을 견디는 숭고한 그들의 삶을 외부에 알리며 기록으로도 남기고 있다.

10여년전, 박병문을 지하 1천 미터 아래 갱도로 이끈 기억의 근원에 아버지가 있었다. 최근 전시를 위해 대구를 찾은 박병문이 희미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치아와 눈만 하얗고 석탄가루로 범벅된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시면 저를 데리고 목욕탕을 가셨어요. 목욕탕 가는 것은 광부들의 퇴근 후 풍경이자 일종의 의식이었죠.”

그의 아버지는 지하 갱도의 최전선인 막장에서 채굴된 탄을 갱차를 이용해 외부로 실어나르는 일을 했다. 말하자면 갱차 운전 광부였다. 그의 아버지는 6.25직후 광부를 시작해 52세가 되던 1989년에서야 막장을 떠났다.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전장에서 파편을 맞아 몸이 성치 않은 상이용사였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허락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배급식으로 먹는 것이 해결됐던 탄광은 신체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에게는 매력적인 일터였다.

박병문이 땅도, 하늘도, 사람도, 모든 것이 검었던 탄광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은 1991년도였다. 중학교부터 공부를 위해 도시로 떠났다가 축협에 취직하면서 탄광촌으로 발령이 나면서 다시 돌아왔다. 월급날이 되면 그가 일하는 축협에 광부의 아내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월급을 찾기 위한 행렬이었다. 그 풍경을 보자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검은 얼굴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텁텁하고 고온다습하며, 끈적이는 분진들의 사투장인 막장에서 숭고한 검은 땀방울을 흘렸을 아버지의 삶이 떠올랐고, 그분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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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문

갱도의 광부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광부들의 허락을 얻기까지 긴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분진과 땀범벅으로 얼룩진 얼굴을 찍히는 것을 광부들이 원하지 않은 것. 일단 부딪히는 길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주위를 맴돌며 얼굴을 익히고, 마음을 여는 노력을 3~4개월 정도를 했다. 그제야 그들은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들과 함께 갱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회사와 광부가 허락을 해도 그들의 가족들이 반대하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죠. 억지로 찍으면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분들의 허락을 구할 때까지 소통하며 기다렸죠.”

최상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얻으려면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 상황까지 가는데 1~2년이 걸렸지만, 막상 자신들의 모습을 본 광부들은 감동을 숨기지 않았다.

“광부들이 막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내가 이런 얼굴로 일을 하고 있었네’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시고 감동어린 말씀을 주셨어요. 그럴 때 작업하는 행복을 느끼죠.”

탄광촌에서 찍은 사진은 7개의 프로젝트 전시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아버지는 광부였다’, ‘검은 땅 우금에 서다’, ‘아버지의 그늘’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이어왔고, 김광석 거리에 소재하는 예술상회 토마 갤러리에서 4번째 이야기인 ‘선탄부(여자 광부)’전을 최근 시작했다. 이후에도 ‘경동 탄광’, ‘한보탄광’ 등의 주제 전시를 계속할 계획이다.

‘선탄부’는 여자 광부들의 작업장이다. 갱구 밖으로 운반된 석탄에서 불순물인 잡석이나 석탄이 아닌 이물질을 골라내는 부서다. 이들은 막장에서 캐내어진 탄들을 섬세한 손놀림으로 괴탄과 경석으로 구분하는 일을 한다. 여자 광부 채용에는 가슴뭉클한 조건이 따라붙는다. 무너진 막장에서 사고를 당해 죽은 광부들의 아내만 선탄부에 채용한다.

“선탄부 손에 의해 탄이 상품으로 출고될 때까지 30개의 컨베이어 벨트를 돌고 돌아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그 혹독한 분진과 소음을 견디며 밤새워 작업하는 그들의 얼굴은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삶의 무게와 숭고함이 있죠.”

문재인 정부가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탄광은 존폐위기의 기로에 섰다. 5년 안에 탄광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탄광촌을 감싸고 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서 박병문의 사진 작업은 기록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더한다. 그의 작업의 방향성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광산이 문들 닫게 되면 국가차원에서 광부들의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어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제가 찍은 광부들의 사진을 역사자료로 남기고 싶다는 의견이 오가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봐요. 제가 찍은 광부들의 사진이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의 겨울을 덮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분들의 삶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시는 2월 4일까지. 053-522-8155.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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