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불빛을 쬐듯 장만해 둔 상가 재계약일
낡은 새시 수리 교체를 두고 임차인과
의견조율이 안 맞아 신경전을 벌이는데
곁에 있는 4살 먹은 딸아이가
“우리 아빠에게 뭐라하지 마세요” 하며
으앙 울음을 터트렸다
순간 정적이 민망해 그만 바깥으로 나와 버렸다
어이없고 황당한 마음 아들에게 말 했더니
“서민 등골 빼 먹는 사람이 울 어머니네” 하며
“그냥 교체해주세요
가르침은 늘 더불어 잘 살자며
일상은 온 누리가 엄마식이네” 한다
이래저래 당하고 독한 말 독나방으로 날아 붙던 날
누구에게 그리 못할 짓 할 능력도 없는 내게
부처님 속 같은 말은 누가 못해
*피레네 산맥 이쪽은 진리요 저쪽은 오류다
긁힌 마음 받아 달라고
시에게 보채보는 참 약 오르고 마음 베인 더운 한 나절
*파스칼 팡세의 말 인용
◇이필호 = 1959년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 등단
삶과 문학 회원, 옻골문화제 대상 수상
<해설> 참 따뜻한 언어로 슬픈 시를 썼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비애가 저 순수한 아이에게서 묻어난다. 시는 이래서 읽을 만하다. 사람은 누구나 주관적이다. 한데 조금만 배려한다면 객관적이 될 수 있을 텐데. 딸아이의 마음과 아들의 생각이 서료 교차하면서 시의 긴장미를 확장한다. 이는 즉 3연에 귀결된다. 그리고 끝 연에 화자의 심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제왕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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