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보급과 수사 과정에서의 폭력
컴퓨터 보급과 수사 과정에서의 폭력
  • 승인 2018.01.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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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한국소비자보호원 소송지원변호사)


약 30년 전에는 수사기관에서 작성하는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진술조서, 각종 서면은 미리 인쇄된 양식지를 이용하여 타자기로 작성되었으나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타자기 및 인쇄된 양식지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업무 관행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등에 대한 경찰, 검찰의 모욕적인 언사, 사소한 폭력 등이 대폭 사라지게 되었다. 과거 타자기를 이용하여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경찰관이나 검찰수사관이 타자기에 종이를 넣고 피의자라고 불리는 범인과 묻고 대답을 하면서 그 내용을 즉석에서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타이핑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오타가 나면 타자기 지우개, 칼, 수정액을 이용하여 오타 난 부분을 수정하고 계속하여 조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갑자기 범인이 말을 바꾸어버리면 타이핑한 것이 전부 못쓰게 되어 그 용지를 폐기하거나 타자기에서 종이를 다시 끄집어내어 줄을 그어 삭제하고 범인의 허락을 받고 삭제하였다는 의미에서 범인의 지장을 날인한 후 그 종이를 다시 타자기에 끼워 질문과 답변을 계속하는데 그 절차가 어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므로 조사관의 기분은 많이 상하게 된다. 조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다시 “…아무래도 처음 제가 한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조사 용지에 이미 여러 번 줄을 그어 지저분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답변한 내용도 전부 잘못되었다고 하니 하는 수 없이 그 종이는 폐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타이핑을 시작하게 되므로 조사관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게 되어 이제 심한 말이 나온다. 이후 조사를 하다가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조사관의 성격, 피조사자의 태도 등과 결합하여 욕설, 책상을 내리치는 행동, 심하면 손찌검이 시작된다. 타자기를 이용한 조서 작성은 수정이 어렵거나 번거로우므로 어느 순간 피조사자나 조사관이 답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부터 답변 내용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계속하여 작성하여 엉터리 내용의 조서가 작성될 수 있었다. 또한, 타자기를 이용한 조사에는 조사관의 화가 난 상태를 타이핑 과정에서 나타낼 수 있다. 즉 조사자가 화가 나면 타자기 좌판을 세차게 내리치면서 조사하고 1줄이 끝나면 타자기 상단 기계뭉치에 힘을 실어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왼쪽으로 밀어 버린다. 이러한 행동을 하면 피조사자는 ‘아, 조사관가 화가 났구나, 조심하자’라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보다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답변을 하게 된다.

이제 컴퓨터로 조사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오타가 나는 것, 몇 글자 수정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고, 진술 내용의 많은 부분이 잘못되어도 삭제를 하고 다시 타이핑을 하면 되기 때문에 조서 수정 및 재작성에 따른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 조사관이 화낼 이유가 없어 그 부분으로 인한 욕설, 폭행은 없어지게 되었다.

컴퓨터 보급으로 검찰청 여직원들이 정시 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검사가 필기구를 이용하여 서류를 작성하여 여직원에게 주면 여직원은 정해진 양식지를 타자기에 넣고 검사가 작성한 내용으로 타이핑을 하고 그 내용을 검사에게 주어 결제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검사가 일하고 있으면 퇴근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컴퓨터가 보급된 후 ‘검사의 내용 작성 - 여직원이 컴퓨터로 입력 - 검사 결제 - 수정 - 여직원 컴퓨터 입력 - 승인’이라는 과정이 너무 번거로우므로 어느 순간부터 검사가 직접 컴퓨터를 이용하여 대부분의 서류를 직접 작성하게 되었고, 그래서 검사는 야근을 하고 여직원은 6시가 되면 정시퇴근하게 되었다.

과거 변호사가 필기구를 이용하여 소송서류를 작성하여 여직원에게 주면 여직원이 타자기를 이용하여 타이핑한다. 변호사가 대개 오후 5가 넘어서 서류를 넘겨주는 경우가 많은데 여직원은 빨리 퇴근하기 위하여 변호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변호사가 작성중인 서류를 복사하여 미리 일부 내용을 타이핑하기도 한다. 그런데 5시쯤 내어주는 서류에 앞서 작성한 내용이 뒤바뀌거나 삭제되어 버리면 여직원이 미리 준비한 타이핑은 휴지통으로 들어가 아픔도 있었다. 컴퓨터는 정말로 좋은 기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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