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나는 걷는다
[문화칼럼] 나는 걷는다
  • 승인 2018.01.2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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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간결하고 직설적인 제목의 이 책을 나는 몇 해 전쯤 해질녘 제주의 한적한 해변가 카페에서 처음 발견했다. 굳이 지은이 이름을 외울 필요도 없었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제목이니까. 3권으로 된 이 책 읽기를 미루고 있다가 완결판 이라고 할 수 있는 ‘나는 걷는다 끝’까지 구입하고 나서야 한꺼번에 다 읽었다. 책의 내용은 너무나 단순하다. 걷고, 먹고 그리고 자고. 다시 그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내가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심지어 저자가 이질에 걸려 고통 받고 있을 땐 나도 병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책을 손에서 놓으면 멀쩡해 지긴 했지만….

프랑스 저널리스트였던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ier)가 은퇴 후 이룬 세계 최초 실크로드 도보 여행기다. 이 책은 단순하지만 위대한 여정의 기록이다. 예순한 살인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옛 중국의 수도 시안까지 이르는 12,000킬로미터의 실크로드를 4년간 네 번에 나누어 단 한걸음도 빠짐없이 홀로 오로지 도보로만 걸었다. 질병으로 첫 번째 여행길을 중단 한 후 이듬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그 지점을 찾아 여정을 다시 이을 정도였다. 1권은 터키를 횡단해서 이란 국경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2권은 이란에서 우즈벡의 사마르칸트 까지를, 그리고 3권은 마침내 중국의 시안에 도착하기까지의 장도를 담고 있다.

이 길에서 그가 겪은 수많은 고난과 위험한 일보다 더 많은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로 인해 그는 계속 걸을 수 있었다. 가난할수록 더 많이 나누고, 생면부지인 그에게 정을 베푸는 의인들은 그가 이 여행을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 이었다. 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길을 떠난 그는 과거 열여덟 살에 걸린 결핵에 미친 듯이 걷고 달리기에 몰두해 결국 건강을 되찾은 경험이 있다. 그는 이 실크로드 도보 완주 대장정 2년 전에 프랑스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2,325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도보여행을 했다. 또한 걷기를 통해 비행청소년을 돕는 ‘쇠이유(Seuil)’라는 단체를 설립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봉사자와 청소년이 함께 2,000킬로미터 이상을 걷도록 했다. 걷기의 치유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홀로 걷기의 가장 큰 선물인 고독을 즐겼던 그는 사별 후 만난 두 번째 부인 베네딕트 플라테(Benedicte Flatet)의 권유로 2013, 2014 두해에 걸쳐 2,9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구간 프랑스 리옹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그녀와 함께 걸었다. 두 사람이 함께 쓴 그 기록이 ‘나는 걷는다 끝’이다. 그의 나이 일흔 여섯에 여정을 마친 것이다.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의 자전적 소설을 텍스트로한 ‘와일드’역시 걷기의 위대함을 그린 영화다. 절망에 빠진 스물여섯의 젊은 여성이 멕시코 국경에서 미국 서부 태평양 산맥을 따라 캐나다 국경까지 이르는 약 4,300킬로미터에 달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종단을 통하여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가족의 죽음과 마약 그리고 이혼의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길을 나선 그녀는 “94일 동안 PCT를 걷는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힘들 때 자연에 기대는 것처럼 나도 그 길에 기댔고, 갈 곳 몰라 하고 있을 때 그 길은 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마냥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걷는 동안 겪는 고통이 전해진다. 그녀의 발톱이 빠지는 장면에는 나도 아팠다. 목가적인 장면이 펼쳐지지만 걷는 것은 힘들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산티아고 순례 길을 버킷 리스트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한 때 잠시 쉬고 있을 때 그 꿈을 실현 하고자 했다. 그러다 그 즈음에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순례자’를 읽고 잠시 미루기로 했다. 코엘료는 38세에 유명음반회사 중역을 그만두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듬해 ‘순례자’를 쓰게 되었고 세계적 작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감히 그와 비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한 번의 여행으로 이런 작품까지 쓰게 되었는데 나의 산티아고 여행은 ‘남들이 장에 가니 나도 거름지고 장에 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가게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하지만 지금은 인근 둘레 길과 가끔씩 걷는 퇴근길에서도 나는 기쁨을 느낀다. 걸을 땐 걷는 생각만 하고자 노력하며 나는 걷는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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