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평생 추구한 ‘서(恕)’자 공부
정조가 평생 추구한 ‘서(恕)’자 공부
  • 승인 2018.01.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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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전 중리초등 교장)


초등학생들에게 ‘왕의 역할놀이’를 시켜 보았다. 아이들은 왕이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렇다보니까 왕의 역할을 맡은 아이의 대사는 가르치지 않아도 위압적이고 동작은 무조건 거만하게 한다. 역사적 시간의 틈이 보인다.

요즘 현 대통령과 전전 대통령의 다툼 소식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보복’이라는 단어도 나오고, ‘분노’라는 말도 나온다.

아이들은 대통령을 옛날 왕과 같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왕들끼리 왜 저래?’하고 관심을 가진다. 아이들은 학년이 높아지면서 ‘생각한 것을 생각하는’ 메타인지가 발달한다. 조금씩은 알아간다는 것이다. 시시비비에 어느 쪽인가를 편들게 된다. 그것은 현재의 학교교육과정이 토론중심으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론은 무조건 찬성과 반대가 있어야 한다. 자기주장이 필요하다. ‘자기주도적학습’의 과정이다.

보복은 ‘앙갚음’을 말한다. 그런데 앙갚음은 상대에게 항상 더 강하게 한다. 속담에 ‘몽둥이로 맞고 홍두께로 갚는다.’는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분노는 ‘분하여 성을 내는 것’이다. ‘이를 악무는 것’은 분노를 참는 것이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성인이나 위인들은 모두 참고 또 참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나 위인들을 존경하고 본받으려고 한다.

‘일득록(日得錄)’은 신하의 눈에 비친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정조는 ‘일득록’을 ‘날마다 반성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래서 규장각 신하들에게 내가 아침저녁으로 대하는 좌우의 사관과 같은 사람들이 그대들이다. 다만 사실대로 기록하여 나를 경계시켜야 한다. 절대로 사실과 다르게 과대 포장하여 내 마음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아첨하고 잘 보이려는 생각을 키우게 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라는 지엄한 분부를 내렸다.

일득록 처기(處己)에 ‘내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성심으로 대한다면, 그 사람도 나를 성심으로 대할 것이다. 나는 정성을 다하지 않고서 남이 나를 성심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질책한다면, 이것은 ‘서(恕)’자 공부가 전혀 되지 않은 것이다. 내가 평생토록 추구한 것은 바로 이 한 글자 ‘서(恕)’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는 ‘다른 사람을 성심으로 대한다.’는 것을 ‘추성치복(推誠置腹)’이라 했다.

또 정조실록 4년에는 ‘지금의 급선무는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는 것이다. 비록 망령된 생각을 가지고 참다운 깨달음이라고 잘못되게 가르치고 있으니, 어찌 추심치복(推心置腹)의 방도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하였다.

추심치복(推心置腹)과 추성치복(推誠置腹)은 같은 의미이다. ‘정성으로 다른 사람을 대한다.’는 정조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심금을 울리게 하는 말이다.

후한의 초대 황제가 된 광무제는, 건국 과정에서 적대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해 자기 사람처럼 대했다고 한다. 모든 백성들이 ‘광무제는 자기의 마음을 뽑아서라도 다른 사람의 뱃속에 두니, 어찌 목숨을 바쳐 싸우지 않겠는가?’하였단다. 추심치복(推心置腹)의 고사이다.

공자는 ‘충서(忠恕)’로 일관(一貫)되게 살면서 어짊을 실천한 사람이다. 충(忠)은 중심(中心)을 말하고, 서(恕)는 여심(如心), 즉 다른 사람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음을 뜻한다.

공자의 제자 증삼은 ‘충(忠)’은 자기 양심에 성실하려는 정성을 말하고, ‘서(恕)’는 남을 나 자신과 같이 보려고 하는 동정심, 즉 자애심을 말한다고 했다.

제자 자공이 평생 행함직한 말을 물었을 때, 공자는 오직 ‘서(恕)’함이니,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했다.

책벌레였던 정조는 여러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평생 ‘서(恕)’자 공부를 추구하였던 듯하다. ‘다른 사람을 성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정조의 일관된 마음이었다.

사람들에게 도타운 마음을 베푸는 것이 정조의 정치철학이었다. 정조는 자신의 호를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 하고 문미마다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자신감으로 날카롭고 엄정하게 준론탕평의 정책을 펼쳤던 정조를 다시 생각할 시점이다. ‘대통령들끼리 왜 저래?’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왕의 역할극도 점차 ‘서(恕)’의 마음을 닮아갔으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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