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서의 열림
‘걷기’에서의 열림
  • 승인 2018.01.2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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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
학교대학원 아동문
학과 강사
다닐로 자넹이 쓴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는 표제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며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떠올랐다. 우리를 주관하고 있는 것은 몸(육체)인가? 생각(마음, 사상)인가? 청담스님 법어록을 보면 ‘사상은 육체를 나로 삼는데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몸과 생각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기에 걷는다는 행위 속에는 생각하는 행위가 함께 하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이 책 작가의 의도는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까닭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이 본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생각한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이 꽃, 이 나무, 이 산에 진심으로 집중하려면 생각을 덧붙이지 말고 처음인 것처럼 보라. 그리고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오직 땅에만 가치를 두라. 생각은 접고 의식만으로 감각을 받아들일 때 에너지가 회복된다. 시선을 멀리 두고 걸으면 뇌파가 베타파에서 알파파로 이동하면서 일상적 각성 상태의 뇌가 휴식, 명상, 창의성 상태로 바뀌면서 관찰 모드에서 보는 모드로 바뀌어 좋다”

이렇듯, 이 책은 걷는 일에만 집중해서 걷는 효율적인 방법의 제시로 건강을 열어가는 건강 지침서였다. 물론 이런 걷기를 통해 건강을 얻을 수 있음이 감사한 일이다. 그보다 먼저 여행객이나 등산객의 걸음으로 걷거나 순례자의 걸음으로 걷거나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행복해진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축복이기에….

사람들은 제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찾아 걸으며 각기 새로운 것을 얻어 가질 수 있는 출발점을 찾는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산 등반을 적어두고 도전하는 사람들, 바람의 딸로 불리는 한비아처럼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사람들, 무릇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걷기에 대해 거는 기대는 단순히 걷는 것만이 아니다. 절망 속을 걸을 때도, 자신의 내면을 자연에 놓아두고 자기를 읽는 시간을 살게 되면 가슴이 열린다. 자신의 가치를 새삼 받아들이고 희망을 안게 되는 열림이다. 그 예로 ‘길 위의 인생’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본 중년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걸으면서도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그를 리포트가 취재하며 “불편한 다리로 어떻게 천왕봉을 오를 생각을 했나요?” 하자 “이렇게라도 오르지 않으면 평생 못 오를 것 같아서요”가 대답이었다. 그에게 있어 천왕봉을 오름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듯, 자신의 온전함을 확인해보고 싶은 욕망에서였으리라. 몸의 제약을 뛰어넘어 강인한 정신력으로 해낸 자기 성취감이 열리고 자존감이 열려가는 일이었으리라.

더러는 스님이 아니더라도 걸음으로써 자기 마음을 열어가는 사람이 많다. 65세에 800km 국토 종단을 시작으로 10년간 지구 반 바퀴를 걸어온 황안나씨의 국토 종단기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책을 보더라도 그렇다. 학교 교사였던 그녀는 명퇴를 하고 팔자 좋은 여자처럼 혼자서 전국을 떠돌며 걸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어느 TV프로그램에서였다. 그녀를 취재한 카메라는 아무 길가에나 걸터앉아 등산 가방에서 마른 누룽지나 건빵을 꺼내 주식으로 먹고 또 길을 걷는 모습을 비추었다. 10년간 신어 닳은 운동화들 모아둔 것도 화면에 비쳤다. 그의 걷기는 고행으로 자신을 닦아가는 수행이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가난이 죄가 되어 시누이집 잔칫날에도 초대받지 못한 설움을 삭히며 걷고 또 걷는 그녀에게 걷기란 생을 둘러싼 슬픔을 스스로 치유하게 하는 힘이 되었고 스트레스 해소의 처방이 되었을 것 같다. 남편은 그녀에게 “내게 스트레스가 얼마나 쌓였으면 아직도 끝없이 걸어야 살 수 있나?” 고 묻는단다. 남편 뿐 아니라, 처음 국토 종단을 떠날 때 그녀를 아는 둘레 사람들은 그 나이에 미쳤느냐고들 했단다. 그렇지만 그녀는 십년이 넘게 그렇게 걷는 미친 짓을 계속 하고 있다. 돌아보면 그녀의 미친 짓이 그를 건강하고 결단력 있고 용기 있는 여자로 변화시켰다. 시작할 때는 세상을 경계하며 길을 나섰지만 세상은 그를 무장해제 시켰고 더 넉넉하게 열어놓아도 좋다고 가르쳐 주었단다. 삶을 긍정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따스한 품으로 안아주는 법! 죽음에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닦인 마음뿐이라는 깨달음에도 이르게 되었다니….

병든 사람들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 길을 걷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산을 오르기도 하지만 걷다 보면 이렇게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도 열리나보다. “하루하루 사는 게 재미있어서 아플 새도 늙을 새도 없다”는 그녀가 75세 된 지금에도 혼자 전국을 종주하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이유는 단순히 ‘살기 위해서’로 시작했다가 이제는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로 바뀐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걷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최대로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놀이요. 행복한 놀이 속에서 나날이 새로운 것을 충전해가는 충만함에 이르는 열림이다. 개띠 해 새해, 발바리처럼 더 발발거리고 다니며 이 열림을 한껏 누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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