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팔환초’ 43㎞…문필가들 한번쯤은 경치·전망 詩 읊어
‘가팔환초’ 43㎞…문필가들 한번쯤은 경치·전망 詩 읊어
  • 대구신문
  • 승인 2018.02.0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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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팔공산 종주길

신녕천·팔거천·금호강·위천에 둘러싸여

종주 20시간 소요…비로봉 기준 2회 바람직

중간중간 진입·탈출로 많아 등산코스 최적

한티성지는 영남지방 천주교 선교 시발지

군위 삼존석불, 경주 석굴암보다 백년 앞서

갓바위 부처 영험 소문 신도들 전국서 몰려
팔공산종주길-그림지도
동화사-봉황문의통일신라시대마애불
갓바위 부처
갓바위 부처



#팔공산

산경표에는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산은 물을 가르는 물 가름이 되고(山自分水嶺), 물은 산을 나누는 산 가름이 된다고 했으니 팔공산 전체를 조망하려면 산줄기와 물길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현명하다. 팔공산은 대구시 동구, 북구, 칠곡군, 군위군, 영천시, 경산시에 걸친 거대한 산군이고, 산경표상으로 살피면 동쪽의 신녕천(新寧川), 서쪽의 팔거천과 한천(漢川), 남쪽의 금호강(琴湖江), 북쪽의 위천(渭川)에 둘러싸인 지역이다. 팔공산을 큰 덩어리로 살피면 주능선군(가산~비로봉~갓바위), 환성산군, 도덕산군으로 나눌 수도 있다. 낙동정맥에서 분기한 팔공기맥이 영천의 보현산~화산~갑령재를 넘어 잦이고개에서 팔공산이 시작되는데, 주능선군은 잦이고개에서 최고봉인 비로봉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갓바위(관봉)까지, 서쪽으로는 가산까지를 말한다.

환성산군(대구시 동구, 경산시 하양읍 지역)은 능성재에서 동남쪽으로 솟구쳐 환성산~갈미재~비리재~기산~파군재~학봉(가람산)~화담까지의 산줄기와 무학산, 초례봉, 용암산, 도동, 봉무동, 불로동, 동변동, 하양읍 등에 있는 산군을 포함한다. 도덕산군(대구시 북구, 칠곡군 동명면 지역)은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대구은행 연수원 앞의 대왕재에서 다시 솟아오른 도덕산~국우터널~함지산~팔달교까지의 산줄기와 연경동, 서변동, 도남동, 칠곡 택지지구, 동명면 등에 있는 산군을 포함한다.

팔공산군의 남쪽 사면으로 흘러내린 응해산, 거저산, 왕산 등은 물줄기가 없으니 주능선 줄기에 속하고, 환성산군과 도덕산군을 가르는 것은 동화천과 지묘천이다.

동화천은 동구 도학동에서 발원하여 백안동에서 능성천과 합류하고, 지묘동에서 지묘천과 합류한 후 동변동과 서변동을 가르며 금호강에 유입된다. 지묘천은 동구 중대동 파계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지묘동에서 동화천과 합류한다.



#가팔환초 종주길

종주(縱走)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능선길을 따라 걷는 것을 말하는데 640km에 이르는 백두대간을 걷는 것이 대표적인 종주길이다. 종주길 걷기는 산의 등줄기를 따라 긴 거리를 걷기때문에 꼼꼼한 계획을 세워 떠나야 한다. 전국적으로 많은 종주길이 있지만 명칭이나 거리, 구간 등이 혼란스러워 산꾼들은 아예 출발지, 경로, 도착지의 높은 산을 이어서 000종주길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팔공산 종주를 했다고 할 때, 출발지와 도착지가 분명하지 않고 중간 중간에 진입로와 탈출로가 많아 어디에서 어디까지 걸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팔공산 종주길이란 막연한 말 대신에 <가팔환초 종주길>이라 말한다. 가팔환초 종주길이란 가산, 팔공산, 환성산, 초례산(봉)을 잇는 팔공산의 완전한 종주길이고, <팔공산 환종주길>과 함께 대표적인 팔공산 종주길이 된다. 주능선(가산~비로봉~관봉) 종주길은 30km 미만이지만, 가팔환초 종주길은 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을 잇는 종주길로서 도상거리 43km 정도이다. 일반인들의 등산 속도는 시속 2~3km이니 43km의 가팔환초 종주길을 걷는데 2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래서 가팔환초 종주는 팔공산(비로봉)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누어 2회에 걸쳐 종주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팔환초 종주길의 전체 경로는 동명면 학명리 다비암(계정사)~가산~가산바위~치키봉~부계봉~한티재~파계재~마당재~톱날능선~삼성봉(서봉)~주봉(비로봉)~동봉~병풍바위~도마재~느패재~노적봉~관봉~능성재~환성산(감투봉)~새미기재~낙타봉~초례봉~동곡지(신서지, 새론중)이고, 종주길의 전체 경로, 구간별 거리는 다음 그림과 같다.



#팔공산 이야기

대구시민이라면 누구나 팔공산을 한번은 올랐을 것이고, 영남지역의 문필가라면 누구나 한번은 팔공산의 빼어난 경치를 읊었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팔공산을 바라보며(望公山)’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팔공산을 노래한다.

험준한 팔공산이 우뚝 솟아서

동남으로 막혔으니 몇 날을 가야할꼬

이 많은 풍경을 다 읊을 수 없는 것은

초췌하게 병들어 살아가기 때문일세

매월당의 노래처럼 팔공산의 경치는 워낙 빼어나 몇 마디 말로 형용하기는 어렵다. 서쪽 정상인 가산에 오르면 금오산, 가야산, 칠곡의 주택단지가 조망되고, 팔공산 정상에 서면 대구시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갓바위(관봉)에서는 영천시와 경산시를 조망할 수 있다. 동쪽의 환성산과 초례봉에서는 대구시와 경산시 전경뿐만 아니라 대구의 남쪽으로 펼쳐진 모든 산을 조망할 수 있다. 팔공산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몇 가지만 적는다.

서쪽 정상인 칠곡군에 있는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군사용으로 축조된 석성이다. 부산의 동래성과 문경 새재로 가는 중간 통로에 있는 가산산성은 영남제일관이나 진남문의 존재로 알 수 있듯이 주로 영남지방 혹은 남쪽지방을 방비하는 목적으로 축성되었다. 산성의 서북쪽에 있는 가산바위(架巖)는 전망이 넓어 칠곡의 전경이나 도덕산, 다부동 등을 훤히 조망할 수 있다. 다부동과 유학산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이었는데 이곳을 방어했기에 비로소 북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시인 조지훈은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이라며 다부동 전투를 증언하고 있다.

한티재(큰 재) 휴게소 아래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의 한티성지는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의 신나무골과 함께 영남지방 천주교 선교의 시발지(始發地)이다. 김보록(로베르) 신부가 신나무골에 설립한 대구본당(주교좌성당)은 계산성당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범어성당으로 옮겨왔다. 한티마을은 1868년 병인박해로 수 십 명이 순교한 곳이지만 1960년대 말이 되어서야 박병원 신부, 이문희 대주교, 경북대 김달호 교수가 도보 순례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80년대 천주교 전래 200주년 행사로 한티성지개발을 시작하였다. 한티성지는 순례지가 되어 십자가의 길(10처)이 묵상의 길로 조성되어 있으며, 피정의 집, 영성관 등이 있어 천주교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티재를 넘어 북쪽의 군위군 부계면에는 군위삼존석굴(제2석굴암)이 있다. 군위삼존석불은 7세기에 축조되었으니 경주 석굴암보다 백년이나 앞선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에서 비롯된 불상 조성은 중국 돈황 막고굴, 대동 운강석굴, 낙양 용문석굴로 이어져 마침내 군위에 이르고 다시 경주 토함산 석굴암으로 발전하여 불교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다. 삼존석불 아래쪽의 한밤 마을(대율리)은 부림 홍씨가 천년이상 모여서 사는 마을이다. 한밤 성안의 소나무가 멋있고, 마을 안에 있는 대율사의 석불입상이나 진동단(鎭洞壇)이 인상적이다.

부인사는 선덕여왕의 원찰로서 지금도 음력 3월이면 선덕제를 봉행하고 있다. 부인사에는 고려 초조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몽고의 2차 침입시 불타버렸다. 부인사에서 유일하게 스님들의 물물교환 시장인 승시(僧市)가 열렸기에 지금도 매년 10월이면 팔공산 승시를 개최하고 있다. 대웅전에는 선덕여왕을 짝사랑하다가 죽어 불귀신이 된 지귀(志鬼) 이야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귀면문양(鬼面文樣)이 있다.

동화사는 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했으나 832년 심지왕사가 중창하여 동화사라 개명했다. 사지에 따르면 신라말 흥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는 속리산 법주사의 영심대사에게 불골간자(佛骨簡子)를 받아와 동화사를 중창하였다. 영심대사는 진표율사에게 불골간자를 받았으니 김제 금산사, 보은 법주사, 팔공산 동화사는 창건의 역사가 비슷하다. 동화사는 창건 당시에 백제계 불교인 법상종 사찰로서 진표율종을 비호하던 후백제 견훤의 세력권이라 볼 수 있다. 동수전투에서 왕건이 철저하게 패배한 이유는 당시에 동화사 지역이 후백제 견훤을 지원하던 법상종 사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화사의 일주문인 봉황루 앞에는 마애불좌상이 아름답고, 인악대사비, 동화사사적비, 당간지주, 봉서루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 임진왜란 당시 영남 승병 총본부) 편액, 대웅전, 통일대불 등이 유명하다. 2012년 한 탈북자가 한국전쟁 당시에 참전했던 자신의 양아버지가 금괴 40kg을 대웅전 아래에 묻었다고 주장하여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논란이 일자 금속 탐지기를 이용해 대웅전 아래에 무엇인가 금속이 묻혀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문화재청의 반대로 발굴되지 않았다. 그 사건 후에 금괴가 묻힌 동화사 대웅전에는 사업번창을 발원하며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팔공산은 약사신앙의 총본산이다. 중생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제한다는 약사여래는 약합이나 약병을 들고 있는데, 대표적인 불상이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 부처)이다. 갓바위 부처는 남쪽을 향해 앉아있기에 부산, 울산 지역 사람들에게 특히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동화사와 은해사가 갓바위 부처 관리권을 주장하며 오랫동안 갈등하였는데 지금은 조계종 총무원 직할사찰로 선본사(禪本寺)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양 무학산 불굴사에도 갓바위 부처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불이 있다.

그 외에도 팔공산에는 송림사, 파계사, 신무동 마애불상, 염불암, 북지장사, 영천 은해사, 수도사, 백흥암, 운부암, 기기암, 거조암 등의 천년고찰이 즐비하고 역사적인 사실이나 이야기가 넘쳐난다. 가팔환초를 종주할 때 눈앞에 펼쳐지는 수승한 경치를 즐기며 팔공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걷는 걸음이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겨울 등산이나 트레킹은 더욱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칼럼니스트 bluesunk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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