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그리워하다 바람을 닮아버린 너
바람을 그리워하다 바람을 닮아버린 너
  • 윤주민
  • 승인 2018.02.01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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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휘영의 야생화 편지 (7)변산바람꽃과 너도바람꽃
변산서 첫 발견돼 ‘변산’ 명명
잔설 남아 있는 2월 중순 피어
최근엔 거의 전국에 걸쳐 분포
우리나라 서식 바람꽃 약 18종
너도바람꽃, 복수초와 함께 개화
습한 곳 좋아해 계곡 주변 서식
꽃 피는 기간이 별로 길지 않아
변산바람꽃3
변산바람꽃


#봄바람에 산들거리는 꽃, 바람꽃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2월 중순의 내변산 마을엔 복수초에 뒤지지 않을세라 고운 자태로 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며 고개를 내미는 녀석이 있다. ‘변산아씨’라는 애칭을 가진 변산바람꽃이다. 깊은 골짜기가 가두어버린 바람의 비명, 머물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바람의 숨결을 온몸에 받으며, 작은 잎들은 시린 골짜기를 곱게 감싸 안은 햇살에 가는 숨소리를 내뿜는다.

10수년전 지인의 권유로 함께 출사를 했을 때 내변산의 청림마을에서 처음 보았던 변산바람꽃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찬바람에 곧 쓰러질 듯 산들거리며 자리하고는 발그레 수줍게 피어 있는 ‘변산아씨’들과 가슴 벅찬 설레임으로 하루를 보내고 온 날의 기억이 있다. 찬바람 맞으며 진사들과 꽃쟁이들이 조용한 시골마을의 계곡에서 예쁜 꽃을 포착하느라 지면 위를 뒹굴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최초로 발견했다고 하여 ‘변산’이라는 접두사가 붙는다. 한국 특산종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한국특산 종으로 발표하고부터이다. 학명도 발견지인 변산과 그의 이름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그래서 학명도 에란티스 변사넨시스(Erathis byunsanensis B.Y. Sun)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바람꽃 중에 너도바람꽃속(Erathis)으로 분류되는 바람꽃류가 3종 있는데, 너도바람꽃, 풍도바람꽃, 변산바람꽃이 그것이다. 풍도바람꽃은 서해안의 풍도에 서식하는 것으로 이 또한 학명이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알려졌으나, 일본에만 자생한다는 세츠분소우(節分草, 절분초)와 풍도바람꽃, 변산바람꽃은 동일종의 변종(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여)이라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풍도바람꽃(Eranthis pungdoensis B. U. O)은 식물학자 오병운 교수에 의해 명명된 것이다. 학명도 에란티스 핀나티피다(Eranthis pinnatifida Maxim.)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속명 에란티스(Eranthis)의 ‘er’은 ‘봄’, ‘anthis’는 ‘꽃’이라는 그리스어로 봄꽃이라는 뜻이다. 절분초(節分草)는 일본의 혼슈(本州) 중부 이남에 주로 서식한다. 계절이 바뀌는 입춘(立春),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의 전날 그러니까 새로운 계절이 오기 전날을 절분(節分)이라고 부른다. 입춘이 오는 절분의 시기에 핀다하여 절분초(セツブンソウ)라 하는 것 같다. 따라서 변산바람꽃의 서식지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부 이남의 혼슈(本州)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식지로는 변산반도와 마이산, 선운산, 백양사, 경주 남산, 울산, 예산 가야산, 군포 수리산 등이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서식지가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거의 전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바람꽃 종류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바람꽃 종류는 18종 정도가 등록돼 있다. 바람꽃속(Anemone), 너도바람꽃속(Erathis), 만주바람꽃속(Semiaquilegia), 나도바람꽃속(Isopyrum) 등 4개 속에 걸쳐 분류된다. 바람꽃속에 속하는 것으로는 13종으로 가장 많은데 꿩의바람꽃, 세바람꽃, 들바람꽃, 남방바람꽃, 홀애비바람꽃, 바람꽃, 개래바람꽃, 국화바람꽃, 바이칼바람꽃, 숲바람꽃, 쌍둥바람꽃, 외대바람꽃, 회리바람꽃 등이 있다. 너도바람꽃속의 것은 3종이 있으며 만주바람꽃속과 나도바람꽃속의 것은 각각 1종이 있다고 한다.

바람이 놀다 간 자리/ 그리움 안은/ 꽃잎/ 송골송골/ 눈물로 맺혔다// 스치는 눈빛에/ 멍든 가슴 안고/ 새가 되어/ 종알종알 화답하는/ 가슴에 피는/ 은구슬 닮은// 길섶/ 아담한 꽃/ 홀로 앉은 그 자리에/바람의 넋이 되어/ 말이 없다// 바람꽃이 핀다// (바람꽃 연가 전문/ 구숙희) 이 시에서는 눈물로 맺힌 바람꽃의 간절함으로 가슴에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변산바람꽃의 전설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소년은 바닷가 선창에 서 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소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비는 어부였고 어미는 허풍쟁이였지만 그들은 행복했단다. 어느 겨울, 저녁 내내 바다가 쩌렁쩌렁 울었다. 다음날 아침 바다가 울었으니 나가지 말라는 어미의 말을 뿌리치고 아비는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는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아비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석 달 열흘을 기다려도 아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는 점점 말을 잃어 갔다. 그 때서야 소년은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 불고 바다가 우는 날이면 어미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어미가 우는 날마다 옆집 털북숭이 아저씨가 어미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 밤이면 어미의 방에서는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밤새워 들려왔다. 소년은 바닷가에 나가 온 몸을 떨며 어서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어느 날 어미는 소년이 잠든 머리맡에 달콤한 사탕 서너 개와 빨간 저고리 한 벌을 남긴 채 떠났다. 사람들은 어미가 대천에 나가 큰 돈을 벌어 금의환향 할 거라고 말했다. 바람이 몹시도 불었다. 소년은 여전히 바닷가 선창에 서 있었다. 바람이 소년의 머리카락을 흩날렸고, 소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년아 울지 말아라 내 너를 달래주겠노라. 세월은 그렇게 가고 또 오는 것을.” 어미로부터 생성된 그리움으로, 그리움은 그리움을 잉태하고 망부(望夫)가 되어버린 소년은 새하얀 꽃이 되었다. 마음 서럽게 변산반도 한 모퉁이에 피어나는 꽃이 되었다. 그래서 갯가인 변산반도, 고흥의 외나로도, 여수의 향일함 등지에서 변산바람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어미와 애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은 전설이 되고 여기서도 꽃으로 피어난다. 한이 없고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봄기운이 느껴지는 늦겨울의 차디찬 대지를 뚫고 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며 피어나는 가녀린 자태에는 애절한 그리움과 간절한 기다림이 투영되어 있다. 바람을 그리다 바람을 닮아버린 너는 변산바람꽃. 그래서일까 ‘변산아씨’라는 애칭이 붙는다. 꽃을 처음 보는 순간 이 애칭이 딱 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도바람꽃3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복수초가 얼굴 내밀고 나올 무렵 찬바람과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또 하나의 바람꽃이 너도바람꽃이다. 개울가나 습윤한 곳을 좋아하여 계곡 주변에 주로 서식한다. 너도바람꽃도 낙엽수림 아래의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봄살이식물(spring ephemeral)의 하나이다. 개화 기간이 별로 길지 않아 얼어붙은 땅이 녹는가 싶으면 올라와서 불과 며칠을 지나면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힌다. 너도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 너도바람꽃속의 여러해살이풀로 이른 봄 산지의 반그늘에서 자란다. 높이는 10~15cm 정도이며 지름 2cm정도 흰색 꽃이 한송이씩 달린다.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달걀모양이다. 학명은 Eranthis stellata Maxim이며, 속명 에란티스(Eranthis)는 봄꽃을 의미하고 종소명 스텔라(stellata)는 별처럼 생긴 잎 모양의 특성을 나타낸다. 가장 뒤의 막심(Maxim)은 이 종을 명명하여 등록한 사람의 이름을 나타낸다. “바람아, 바람꽃아, 안녕, 안녕. 아주 먼 이별이라 우리 서로 말하지 말며 이별을 하자. 설움을 말하는 이별이 아니라 다시 피워 올려질 그 날의 멋들어진 해후에. 기쁨의 시간을 위한 그리움이며 기다림을 익히자.” 지역에 따라 2~3월 혹은 3~4월에 개화하며 봄철 한철을 피었다가 봄살이식물이기에 초여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다시 길고긴 동면에 들어간다.

겨우내 잠복해 있다가 불쑥/ 꽃대궁 밀어 올리는 건/ 땅속 어둠 때문만은 아니리// 은밀히 점령한 추운 기억들/ 그만 버리고 싶은 것/ 이렇게 먼 길 걸어오기까지/ 부은 발 따뜻이 씻어주지 못 하리// 자꾸만 욱신거리는 몸/ 결국은 스스로 제 살 찢고/ 신음소리 내는 것이리// 전 생애를 다 바쳐/ 꽃숭어리 하나 펼쳐 보이는 길/ 얼마나 처절했기에/ 저리 환하게 맺혔단 말인가// 세상살이 자주 꺾이던/ 바람은 연둣빛이었으리/ 무너지는 담장에 기댄/ 붉은 종양덩어리// 너 사는 날까지만 살으리// (너도바람꽃(『물에 뜬 달』 시에, 2011)/ 황구하)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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