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만장(挽章)
괴물의 만장(挽章)
  • 승인 2018.02.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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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요즘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비롯한 최영미 시인의 작품 ‘괴물’을 필두로 발화된 ‘me too’에 대한 관심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판결시비까지 가려질 만큼 뜨겁다. 너도 나도 목격담이나 경험담을 털어놓는 건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이 엄청난 부정의 진실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이설이 필요한가. 이들의 폭로시기를 두고 국민들이 가지는 반감과 공분도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여태 뭐하다가 이제야 인사와 처우에 불만을 품고 폭로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거나 어림잡아 짐작하곤 한다. 위험한 발상이다.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게 된 사회전반의 분위기에 감사해야 한다. 역대 정권을 통틀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인사 불이익과 문단 내의 편 가르기는 고사하고 신변에 위협을 느낄 만큼의 외압이 작용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먼저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편 크게 다르지 않은 사건을 본지 2017년 9월 25일 대구논단에 발표한 필자의 칼럼 ‘보편(保便), 시늉과 실행’에서 다룬 바 있다. 여류 작가의 허벅지와 허리를 연신 쓰다듬고 더듬는 연예인 L씨의 표정과 말투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는 입으로는 민주열사와 민중 시인들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테이블 아래로는 그러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본 필자에게 돌아온 대답은 실로 놀라웠다. ‘연세가 많은 L선생님이 정이 많아서 원래 그러신다.’가 대답이었다. 피해자가 분명한 그녀에게 그는 가해자가 될 이유가 없었다. 그녀 스스로가 피해자가 아니라 그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여긴 탓이 크리라. 차라리 불륜이라면 이해라도 할 텐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다른 이유로 필자와 언쟁을 벌이고 인연을 정리했지만, 뭔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런 그가 또 하나의 ‘괴물’임에 분명한데, 잠잠한 것은 그의 영향력은 물론이고 교활할 정도로 ‘치고 빠지는’데 능숙한 기술적인 언변이 작용했다고 보여 진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는 밝히고 싶지만, 피해자가 피해라고 인지하기 전까지는 도무지 어찌할 재간이 없음은 분명하다.

처음부터 괴물인 경우는 드물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습작에 힘써 등단하거나, 풍요로운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이 결핍된 존경의 욕구를 만족하기 위하거나 일단의 목표를 위해 작품들을 발표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서를 무상 배포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어떤 식이 되었건 문단에 발을 들여놓으면 일반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냥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게 되면 직장 내의 수직적인 관계와 유사한 상하 조직 구조를 경험하게 된다. 그조차 싫으면 각종 혜택, 이를테면 추천이라든지 원고청탁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최영미시인도 거의 십년 동안 청탁이 없었다지 않는가.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괴물’과의 껄끄러운 관계도 영향을 준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괴물은 한 사람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 최영미 시인도 JTBC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시라는 문학작품으로 발표한 것이다 보니 다소 과장되거나 은유되어진 부분이 적지 않다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en이라는 한사람을 떠올리고 쓰기 시작했지만, 쓰다보면 여러 경우와 대상들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무슨 신문 기사를 다루듯 ‘이런 일은 없었고, 저런 일은 빠졌다.’는 식으로 따져서는 곤란하다. 문학은 그렇기 때문에 다소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문단을 통틀어 ‘썩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썩을 문단이 있기나 한 건지 필자로서는 되묻고 싶다. 성지처럼 혹은 신기루처럼 아슴푸레한 그 문단이라는 게 어디 있는 건지 모르겠다. 꽤 알려진 몇몇 영향력 있는 작가들의 모임들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굵직한 협회 몇 군데를 이야기 하는 건가. 문단은 어디 있는가. 사전적 의미는 ‘문인들의 사회’가 문단이다. 문인들의 사회는 이미 ‘죽은 시인들의 사회’가 된 지 오래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문학을 빙자한 그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곤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성인 중에서 40%가 연간 독서량이 0권인 마당에 문학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기에는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 그냥 그 사람이 괴물일 뿐이다. 읽지 않는 작품들을 쓰는 작가들도 딱하지만, 문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분개하는 이들도 참 딱하긴 매 일반이다. 그나마 그들이 먹고 살만한 유명작가들이라는 점에서 다행이다. 어쩌면 문학을 하는 이들은 절박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의 생계조차 꾸리기 힘든 문학인들은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너무 부끄러워 한동안 글을 쓰기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오욕의 만장(挽章)을 내걸고 괴물을 떠나보내야 할 이유도, 스스로 괴물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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