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무늬 창가에 앉아
기우는 가을 뜨락을 본다
아무 일도 없다며
쓸쓸한 흰 웃음으로 앉은
들국화
가을비에 젖고 있다
가슴 한 자락에 솟구치는
추억을 스크랩해
부칠 곳 없는 편지를 쓰면
숨어든 침착이 고개를 든다
누구를 사랑해 본 적 있는가
내 존재의 비어 있는 안쪽에서
사랑은 언제나 미열과 집착과
한통속이다
▷경기도 평택 출생(본명 정란). 『문학예술』 신인상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 현 충남 예산 가야문학회 회원으로 예산에서 창작 활동.
살아가다 보면 어느 한갓진 마음의 길목에서 지난날이 고개를 들고 저홀로 눈뜨는 때가 있다. 그 눈뜸을 우리는 추억이라 부르기도 한다.
추억이 네모진 격자무늬의 창 너머 뜨락에서 저무는 가을을 보는 화자의 `쓸쓸한 흰 웃음’의 들국화. 지난날의 가을비에 젖고 있는 들국화의 `흰 웃음’은 비단 화자의 심상이랄 기교나 이미지 이전에 공감이라는 숙명의 책무를 벗어날 수는 없다.
4연 14행으로 짜여진 이 시는 `내 존재의 비어 있는 안쪽에서 / 사랑은 언제나 미열과 집착’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보여 주고 있다. 이 역시 누구나 공감하는 결론이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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