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 그리고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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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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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승강기를 탔다. 위층에 사는 초등학생 여자애가 수줍게 인사를 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 멈칫했다. 곁에 서 있는 아이엄마가 “선생님, 괜찮아요. 요즘 세상이 좀 그렇죠?”하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요즘 세상이 좀 그렇긴 하다. 마침 간식으로 가방에 있던 초콜릿이 있어서 건넸더니, 이번엔 아이가 엄마를 올려다본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포장지를 벗기더니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동화처럼 예쁘고 고운 세상은 아니어도 저 아이에게 좀 그런 세상을 보여줘선 안 되는 건데 참으로 미안해진다.

국내 미투 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 다음날인 1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도 장·차관 워크숍에서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정부혁신과제에 이를 포함시킬 것을 주문했다. 이후 각계각층의 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된 성폭력 관련 폭로전이 봇물 터지듯 시작되었다.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벌써 22건에 이르렀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의혹이 있다고 여기는 제보가 SNS를 통해 오르내리고 있다. 3월 1일 경찰청에 따르면 각 지방청과 일선 경찰서 등에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인 22건 중에서 정식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2건, 내사에 착수한 것은 4건이다.

한편 연극 ‘택시’로 잘 알려진 경남 김해 극단 ‘번작이’ 조증윤 대표(50)가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에 의한 간음) 혐의로 구속됐다.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가운데 처음으로 구속된 셈이다. 사람이 어디까지 파렴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에게 무대는 욕정과 탐욕의 상차림의 식탁일 뿐이었을까. 고은,이윤택,조민기,최일화,조재현,오달수 등 그야말로 그 수를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가해자들의 사실 부인과 번복, 사과는 정해진 수순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사실이 아니길 바라던 많은 이들이 그들의 법적 대응설을 믿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이들이 이젠 의혹만으로도 사실임에 분명하다고 믿는 편이 많아졌다. 그만큼 사회 전 분야에 만연되어 있는 성폭력의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실망과 슬픔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추잡하기 그지없는 일화들이 낱낱이 밝혀질 때마다 익숙해져가는 불신과 의혹들은 남성혐오증을 가지기에 충분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혹자는 미투 운동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성폭력의 수위가 애매하다는 것과 가해자가 공인인 점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사실관계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실명을 거론해서는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가해자가 법적인 책임을 물을 이유가 없거나 경미해서 오히려 피해자가 무고죄(誣告罪)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무고라는 것은 상대를 깔보고 허위사실을 신고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사회적 약자가 용기를 내서 피해사실을 널리 알리고 가해자들의 폭력을 단죄하고 더 이상의 재발을 막자는 데 있다. 그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가해자가 처음에는 부정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도 그들처럼 기억이 모호하거나 증거자료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만큼 가해자들에게 성희롱은 관례이며, 그들의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그들만의 특권이었기 때문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하지 않았던가. 피해자들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흩뜨려지지 않는 뚜렷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다. 당시에 느꼈던 공포와 처참하게 부서져 내리는 약자의 자존심 등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증거가 된다. 법적인 증거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기억은 피해자에게는 명백한 증거이다. 경찰은 가해자의 지명도 등에 따라 조사 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명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해자의 변호 인력이나 증거 인멸 등을 우려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해자는 폭로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가해자는 무엇을 잃게 되는 걸까. 폭로 이후 피해자는 수많은 낯선 이들로부터 조롱과 비아냥거림도 견뎌야만 했고, 익숙하지 않은 유명세도 치러야했으며, 악몽 같은 ‘그날’의 피해사실을 이곳저곳에서 곱씹어야만 했다. 승승장구하던 가해자가 ‘인간적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서 ‘끝났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무엇을 잃었는가. 피해자는 ‘그날’로부터 지금까지도 그날에 머물러 있는데, 가해자는 상습적으로 또 다른 그녀들에게 ‘그날’을 낙인처럼 새기고 있었다.

me too 운동에는 부작용이 없다. 단지 with you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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