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개입, ‘넛지(Nudge)’의 지혜
부드러운 개입, ‘넛지(Nudge)’의 지혜
  • 승인 2017.11.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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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부국장)


사회가 민주화되고 발전할수록 많은 의견의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견을 좁히는 수단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분명하게 가치가 있고 해야 할 명분이 있음에도 눈앞의 개인적 이득과 편리를 위해 일어나는 갈등의 요소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 각종 정책이나 규제, 제약의 기술로는 풀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후 내놓은 부동산과 최저임금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인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전국 주요도시의 중심지역을 타깃으로 한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은 되레 집값 상승의 부메랑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징벌적인 규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반발심리와 향후 반등의 기대심리까지 작용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 시장에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 또한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소상공인들과 청년들을 벼랑끝으로 내몰아 생존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보호해야 할 계층을 위한다는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로는 최하층민인 비숙련·저임금 근로자에게 가장 혹독한 타격이 되었다. 정부는 3조 원의 일자리안정기금을 마련했지만, 사업주는 물론 근로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근로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임금만 인상한다고 해서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수는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을 뜻하는 넛지(Nudge)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 단어는 2017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와 카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공저인 ‘넛지’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말이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뜻이다.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몸짓에는 팔 비틀기와 옆구리 찌르기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팔 비틀기는 억압 및 규제적 방법이고, 옆구리 찌르기는 ‘옆구리 찔러 절 받기’라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유화·암시적 방식이다. 저자는 후자의 우월성을 역설했다. 합리적인 선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타율적 강압보다는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부드러운 개입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넛지를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도 일컫는다. 정부(또는 기업)가 나서서 국민(또는 고객)의 복지(또는 만족)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개입은 필요하고 오히려 권장할 일이라는 점에서 개입주의를 두둔한다. 다만 개입 시에는 억압이나 처벌보다는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에서 자유주의를 수식어로 부가한다.

넛지의 대표적 사례는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화장실에서 탄생했다. 켐펠이란 기업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안에 파리 스티커를 붙여 놓는 것이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소변이 밖으로 새나가는 현상을 80%나 줄이게 되었다. 이제 세계의 주요 공항과 대학, 호텔은 물론 일반 공공화장실에서도 소변기 속의 파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큰 돈 들이지 않고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개선할 수 있는 넛지는 특히 공공부문에서 더욱 중요하다. 저자는 저축, 주식투자, 신용카드, 의료보험, 장기기증 등의 사례를 들어 선택의 자유와 합리적 판단의 길을 동시에 열어주는 부드러운 유인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 의료보험, 최저임금, 복지 예산 등의 정책은 원론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철저한 공론화 과정 등을 거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의 일방적인 추진이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 있지만 언제든지 사회적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원전, 복지 등의 정책은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보고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가 넘어야 할 벽이 만만치 않게 높다는 건 누구나 다 짐작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적폐 청산’도 하루속히 끝내야 한다. 꼭 필요한 과제를 골라서 속전속결로 끝내고 산적한 국정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6월 지방선거를 갈등이 아닌 통합의 선거로 잘 치러야할 것이고, 지지부진한 개헌 논의도 마무리 지어야 한다. 개헌은 일단은 국회의 몫이지만 대통령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잘 의논해 반드시 실현하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각종 정책이나 규제로 풀기 어려운 산적한 현안문제들은 정치권은 물론 우리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변화의 바람에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선행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팔을 비틀지 말고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부드러운 개입의 지혜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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