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식은 부모의 욕망을 욕망한다
  • 승인 2018.03.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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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자크 라캉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인류의 커다란 성취는 인간이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굳이 학자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인정받으려는 우리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첫 월급을 탔을 때, 승진했을 때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들이 “대단하다, 대견하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우리의 성취를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전화를 거는 첫번째 대상은 대부분 부모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본질적이고도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처음으로 걷기 시작하는 아이가 건너편에서 기다리는 부모에게 뒤뚱뒤뚱 걸어가면서 환하게 웃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성취를 기뻐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혼자 양말을 신은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며 “잘했지?”라고 말하는 것 역시 ‘혼자 양말을 신은 나를 대견하다고 말해달라’는 뜻이다. 받아쓰기에서 100점 맞기,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 하기, 자기 방 치우기, 동생 돌봐주기 등 아이가 스스로 하는 수많은 일들은 ‘부모가 기뻐할만한 일을 하고나서 칭찬받으려는 욕구’가 그 뿌리다. 그래서 나는 곧잘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 부모들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소박한 소망을 말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부모들이 아이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예외 없이 ‘좋은 성적’이다. 부모가 가장 바라는 것이 100점짜리 시험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고 싶어서 나가 놀고 싶고, 게임하고 싶고, 자고 싶은 모든 유혹을 참고 공부한다. 아이가 공부하는 이유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이가 공부하는 유일한 이유는 엄마, 아빠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오늘도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부모의 기대를 따라갈 수가 없다. 성적이 오르면 부모의 기대는 더 커지고, 성적이 떨어져도 기대가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부모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인정해주기는커녕 이것밖에 못하느냐고 야단을 칠 때, 남들과 비교하며 면박을 줄 때, 아이는 좌절한다. 이 좌절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렬한 욕구의 좌절이므로 그 상처가 크다.

혼자 울기도 하고, 다음에는 더 잘해보겠다고 각오하기도 하지만 부모의 기대는 끝이 없고 자신의 절대 그 기준을 맞출 수가 없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계속해서 좌절되면 아이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방식을 쓰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는 틀렸으니 자신은 처음부터 그 기대에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거나 부모가 기대하는 것은 절대 주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한 아이는 “너는 공부재능이 뛰어나 보이는데 마음먹고 공부를 해볼 생각은 없니?”라는 내 질문에 “싫어요. 성적 잘 나오면 엄마가 좋아해요”라는 말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고, 지금도 EBS를 켜면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부모님의 모든 기대를 부숴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흔하게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은 비뚤어진 아이들이 아니라 수없이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했으나 결국은 그것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고 분노하게 된 아이들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남보다 앞서나가라고, 인재가 되라고 부모는 자식을 공부시킨다. 그러나 아이는 더 좋은 사람이 되거나 남들보다 앞서거나 인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부모로부터 받는 인정이다. 대견하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기특하다고, 내 자식이어서 고맙다고 엄마, 아빠가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이들이 원하는 전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 어릴 때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었는지, ‘너는 너무 대견하다’는 말이었는지. 당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지금 아이에게 해줄 때, 아이는 당신이 바라는 모습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는 벌써 당신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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