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기회는 위기다
준비 안 된 기회는 위기다
  • 승인 2018.03.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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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개구리가 겨울잠을 깬다는 경칩(驚蟄)이 지나고 이틀 뒤 목요일, 겨울이 단단히 심술이 났다. 봄이 왔다고 사람들이 너무 호들갑을 떨었던 모양이다. 겨울이 시샘이라도 하듯, 눈이 엄청 내렸다. 한 겨울에 오던 눈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눈 오는 풍경에 운치는 있었지만 들판의 포도밭은 난리가 났다. 눈의 무게에 의해 비닐을 덮은 비 가림 설비가 많이 무너져 내렸다. 농가에 피해가 많았다.

펑펑 내린 눈이 녹고 햇볕이 좋은 오후, 아내와 함께 마을 뒷산에 올랐다. 오르다 보니 파란 잎의 소나무가 여기저기 많이 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사람 몸통만 한 소나무도 허리가 뚝 부러져 가지가 땅에 머리를 박고 있기도 했다. 대부분 잎이 무성하고 잔가지가 많은 나무들이 부러져있었다. 눈이 쌓이면서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나무들이 부러진 것이다. 가지가 크지 않고 잎도 많지 않은 나무들은 위기를 잘 넘긴듯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이내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이 우리들 모습 같았다.

우리는 모두 좋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때론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부(富)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게 자신을 위협하는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인지(認知)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찾아온 기회는 도리어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마치 양날의 칼과 같이 우리를 다치게 한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고 했다. 그래서 늘 위기와 기회는 함께 붙어 다닌다. 찾아온 기회를 기회로만 보는 눈을 가졌다면 아직 인생살이 초보 수준이다. 기회 뒤에 숨은 위기와 위기 뒤에 숨은 기회를 볼 줄 알아야 인생의 고수가 될 수 있다.

뿔이 크고 화려한 사슴이 살았다. 모든 사슴이 그를 부러워했다. 그 사슴도 자신의 크고 멋진 뿔이 늘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몸에 불만이 있었다. 바로 마르고 가녀린 다리였다. 큰 뿔에 비해 자신의 다리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는 것 같아 늘 불만이었다. 사슴은 작은 연못을 즐겨 찾았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멋진 뿔을 보며 미소 짓다가, 물속에 비친 가느다란 다리를 보며 울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수풀에서 지켜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늑대가 살금살금 숨을 죽이며 사슴 가까이로 다가갔다. 늑대가 다가온 것을 알아차린 사슴은 잽싸게 내 달렸다. 사슴의 날렵하고 가는 다리는 늑대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멀리까지 그를 도망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그의 가는 다리가 사슴을 살린 것이다. 사슴은 멀리서 달려오는 늑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개를 들어 의기양양하게 크고 멋진 뿔을 치켜세웠다. 그때였다. 머리가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버린 것이다. 아무리 빼보려 했지만 크고 튼튼한 뿔은 나뭇가지와 하나가 되어서 빠지지 않았다. 점점 늑대의 모습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보면서도 사슴은 발버둥만 칠 뿐이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사슴은 깨달았다. 자신이 그렇게 싫어했던 가는 다리가 생명을 살렸고,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며 뽐냈던 뿔이 결국 자신을 죽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예전에 강의를 처음 시작하는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사다리 높이가 높을수록 위험은 더 커지는 법이다. 한 칸의 높이에서 미끄러질 때와 열 칸의 높이에서 미끄러질 때 그 충격은 다르다. 그러니 너무 앞서 잘 되려고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내공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때 그 말을 후배는 잘 이해했을까?

작고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키는 법이다. 화려함만을 쫓는 우리가 되지 말자. 아무리 튼튼한 지붕이라도 눈이 계속 쌓이게 되면 지붕은 위험하다. 어느 정도까지만 멋스럽게 쌓여주고 나머지 것은 바닥으로 흘러내려줘야 한다. 채움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비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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