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 그 진실의 관조(觀照)
모르쇠, 그 진실의 관조(觀照)
  • 승인 2018.03.1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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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중국 송나라 때 사람으로 손광헌(孫光憲)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대의 풍속과 문인들의 일화를 ‘북몽쇄언’이라는 저서에 수록했는데, 거기에 왕광원(王光遠)이라는 진사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출세욕이 남달라 권력자들과의 친분을 위해서라면 만취한 이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손해 볼 일이 아니라며 야욕을 포기하지 않은 걸로 유명했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광원의 낯가죽은 열 겹의 철갑처럼 두껍다(光遠顔厚如十重鐵甲)’라고 말했다. ‘철면피(鐵面皮)’라는 말의 유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송사(宋史) ‘조변전’에는 또 다른 철면피가 전해지는데, 조변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관리의 부정을 감찰하는 벼슬)가 되자 권력자건 천자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건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그 부정을 적발하므로, 사람들은 그를 철면어사(鐵面御史)라 불렀다. 아쉽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면피는 왕광원에 가깝다.

지난 주 뜨겁게 뉴스에 오르내리던 자막은 ‘이명박 전 대통령, 모르쇠로 일관’이었다. 검찰도 오죽하면 언론을 통해서 답답함을 호소했을까 싶다. 국민들의 민심을 통해 피의자에게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의 함구가 얼마나 인력과 시간을 탕진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개발이라는 이유로 이미 한반도의 자연을 훼손한 죄만으로도 용서받기 힘들다. 필자는 그때 분명히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았다.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해버린 그의 불굴의 야욕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 시장 재직 당시 청계천은 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오고 펌프질에 길들여진 인조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도랑과는 차원이 다른 4대강 개발 사업은 심각한 문제를 지금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 그런 그가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그런 그가 지난 14일 검찰조사에서 2011년 10월 미국 순방을 앞둔 시기에 김희중 당시 청와대 부속실장을 통해서 10만 달러를 받았다고 시인했지만, 대북 공작을 위한 ‘나랏일’을 하느라 쓴 돈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밝힐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부분은 밝힐 재주(?)가 있으면 검찰에서 밝혀보라는 식이다. 피의자가 검찰에게 숙제를 내준 셈이다. 과연 이 무례하고 거만한 숙제를 검찰이 어떻게 풀어갈지 사뭇 궁금하다.

한편 2011년 6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그해 5월 9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 홍창화 국가정보원 국장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기 위해 북측과 비밀접촉을 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태효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홍창화 국장이 트렁크에서 돈 봉투를 꺼내 들자 김 비서관이 그것을 받아 우리(북측) 손에 쥐어주려고 했다”, “우리가 즉시 쳐 던지자 김 비서관의 얼굴이 벌게져 안절부절못했으며, 홍 국장이 어색한 동작으로 트렁크에 황급히 돈 봉투를 걷어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당시 비밀접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북한 측에 돈을 건넨 적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건넨 적이 없다는 건 북한의 보도를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사실이다. 북한 측이 거부했다면 말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함께 꾸린 TF팀이 대북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국정원이 지원한 금액이 10만 달러라면, 출처는 분명하다. 하지만, 사업추진에 소요되지 않은 예산이 왜 대통령 개인 사저로 흘러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국정원이 안보 사업을 위해서 쓰일 예산이 왜 개인의 ‘나랏일’을 위해 직접 챙겨야만 했는지 궁금하다. 그토록 은밀하고 긴급하게 챙겨야 할 나랏일은 자랑해도 시원찮을 판에 검찰에게 ‘맞춰보라’는 식은 곤란하다. 대한민국 검찰이 그리 한가할 리도 만무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역사가 오욕의 심판을 기록하지 않으려면 검사 여러분들은 모두 철면어사(鐵面御史)가 되어야 한다.

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큰 범죄를 서슴지 않던 권력자들의 횡포는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만 한다. 왕광원과 같은 철면피들이 득세를 하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간신 모리배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에게 잘 보일 수 있을지, 대통령의 기호를 살피기에 급급하고 어찌하면 그가 좀 더 편해질 수 있을지, 단 한 사람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 이들에게 국민들의 안위를 어떻게 믿고 맡길 수가 있단 말인가.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범법 사실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를 관조(觀照)하는 국민들을 더 이상 무시해선 안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이 그에게 처해질 형(刑)에 더 무거운 추(錘)를 달아 진실 앞에 무릎 꿇게 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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