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용 예술감독 “은유의 미학 살린 안무로 대구 무용 명성 되찾을 것”
김성용 예술감독 “은유의 미학 살린 안무로 대구 무용 명성 되찾을 것”
  • 대구신문
  • 승인 2018.03.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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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트라우마 담은 데뷔작 ‘군중’

독창적 문제의식 호평 만석 기록

“내 춤은 가해자들에 전하는 메시지

의미 함축해 다양한 해석 여지 남겨”

10대부터 무용단 예술감독 꿈꾸며

자신만의 개성 담은 무용세계 형성

발표 작품 130여개…콩쿠르 금상도

“한국의 정서·감성 혼재한 안무 목표”
대구시립무용단정기공연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작품 ‘군중’ 공연 모습. 대구시립무용단 제공



예술감독-김성용
김성용 예술감독
지난 13일과 14일 대구문화예술에서 열린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군중’에 호평이 이어졌다. 특유의 문제의식을 김성용(41)의 스타일로 잘 버무렸다는 평가를 내놨고, 객석은 양일 모두 만석을 기록했다. 최근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 작품을 통틀어 최대 관객수라고 했다. 현대무용이 난해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타 장르에 비해 관심이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선전이다.

이날 호평을 받은 ‘군중’은 김성용이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지난해 12월 부임하고 선보인 첫 데뷔작이었다. 대구 출신인 그는 경북예술고등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한양대 체육대학 무용과에 진학하면서 대구를 떠났다. 동대학원 석사와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안무가로 활동했다. 대구를 떠난지 20여년 만에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대구시립무용단의 감독으로 데뷔작이었지만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의 연장으로 안무를 했다. 관객들이 좋게 봐 주셔서 고마웠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폭력’. 사실 그에게 ‘폭력’은 익숙한 주제다. 지난 5년 동안 ‘폭력’을 시리즈로 다루며 완성도를 높여왔다. ‘폭력’이 주제로 선택된데는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트라우마의 영향이 컸다. 그는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프로 안무가로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사회보편 관습과 적잖은 충돌을 경험했다. 도드라지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며 획일화된 가치를 강요했던 사회적인 폭력에 상처가 쌓여갔다. 피해의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면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사회나 조직 또는 개인에게 폭력의 잔혹성을 적나라함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다졌고, 그 인식이 안무에 담겼다. .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관습에 반기를 든다거나 획일적인 것을 거부하고 개성을 추구하려 하면 여지없이 사회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내 스타일에 대한 욕구가 강한 나로서 그것은 트라우마였다. 내 춤은 내게 폭력을 휘두른 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할 만큼 했다고 여겼다. 지난 5년 동안 폭력을 둘러싸고 다양한 관점에서 폭력을 조망했다고 자족했다. 이제 폭력은 접고 새로운 주제를 모색하려던 차였다. 그러나 폭력이 그의 옷자락을 또 다시 붙잡았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접하면서 새로운 관점이 생겼고, 대구 첫 데뷔작의 주제로 ‘폭력’을 낙점했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1964년 3월 13일 뉴욕 주 퀸스에서 일어났다. 캐서린(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강간살해 당한 사건으로 방관자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김성용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작품 ‘군중’을 구상했다. ‘군중’은 피해자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방관자와 가해자 등 전방위적 시각을 다루며 ‘폭력’을 재환기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의 입장에서 반성과 화해를 시도하고 희망의 여운을 남기고 싶었다. 상처 치유를 위해 각자의 입장에서 폭력을 바라보고자 했다.”

대구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김성용. 그러나 그의 예술감독 선임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대구 무용계의 반응은 부정과 긍정이 엇갈렸다. 프로안무가로 데뷔한 이후 계속 연타를 날리고 있는 젊은 안무가에 대한 호기심과 대구에 활약이 전무했던 인물이라는 우려의 시선이 공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성용은 쾌재를 불렀다.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되겠다는 10대 때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대구시립무용단은 꿈의 무용단이었다. 그들의 무용을 보면서 안무가의 꿈을 키웠고, 대구시립무용단 상임 안무가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일찍부터 그의 몸짓은 눈에 띠었다. 교내 중간체조 시간이면 늘 연단은 김성용 차지였다. 그의 체조가 예사롭지 않아 전교생 중에서 발탁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중 3때 담임교사가 그의 끼를 발견하고 연기공부를 권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무용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사는 무용뿐이었다.

안무가 김성용에게 중요한 것은 ‘개성’이다. 삶이든 예술이든 남과 다른 관점, 생각, 특별한 방식, 열린 해석 등의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려 했다. 개성을 중시하는 기질은 일찍부터 발현됐다. 중·고등학교 시기 그는 음악에 심취했는데 즐기는 방식이 좀 달랐다. 카세트 테이프를 500여개나 사 모으는 덕후의 면모를 보인 것.

음악적인 양에 대한 갈망도 남달랐지만 취향 또한 독특해 대중적인 곡보다 어렵게 찾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마니아층의 음반을 선호했다. 안무가로 활동하는 지금도 덕후적 기질은 여전하다. ‘폭력’에 5년이나 매달렸고, 상징과 은유로 회화 같은 독창적인 안무를 선보인 것 등이 그렇다.

그의 안무에 대한 반응은 늘 쾌조였다. 폭력의 상징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펼쳐내며 문제시한 작품들이 발표될 때마다 센세이션하다는 평을 보냈다. ‘폭력’을 시리즈화하며 주제를 심화한 방식도 신선하다는 호평을 이끌었다.

그가 그리는 빅피쳐는 회화 같은 안무다. 한 컷으로 모든 것을 말하되, 보는 이에 따라서 이것 일수도 있고 저것 일수도 있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다. 이 때 고도의 은유법은 회화성과 확장성을 여는 방법론으로 선호된다. 그는 ‘폭력’을 직접 서술하기보다 강한 은유로 풀어내려 한다. 보는 이의 사회적 위치나 심리상태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석의 여지를 넓히는 것.

“무용은 대사가 없다. 전개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나는 모든 장면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단 한 장면에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면 족하다는 주의다. 그때의 감동은 전 장면을 다 이해할 때 오는 감동과 다르지 않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답습이다. 중요한 것은 독창성. 독창성이야말로 인간 김성용과 안무가 김성용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다. 그런데 왜 유독 독창성이었을까?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그의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자. 그는 의외로 창의형과 논리형적 기질을 동시에 드러냈다. 음악을 들을 때도 음악 감상보다 ‘왜 이런 음악이 나왔고, 구성법은 어떤 것인지’를 따지고 들었다.

“무용을 배우면서 무용수보다 안무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주제를 선택하고, 느낀 것을 춤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무대에서 춤추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다. 특히 남과 다른 것이 나왔을 때 희열을 느끼곤 했다.”

예술가는 이 시대의 가장 첨단을 걷는 이들이다. 현 시대의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김성용도 그랬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안무화하며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변화를 촉구했다.

첨단의 예술가가 되기 위한 노력들은 일찍 인정을 받았다. 대학 3학년 때인 만 20세의 나이에 제27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최연소 금상을 수상하며 파란의 주인공이 됐고, 2003년에는 한국무용협회 젊은 안무가전에서 최우수 안무자로 선정되는 것을 비롯 그 이후 크고 작은 안무상을 휩쓸며 독특한 창의성을 인정받았다.

2013년에는 서울무용제에서 대상을 비롯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스타 안무가의 입지를 굳혔고, 전일본국제무용콩쿠르에 한국인 최초로 은상을 받으며 해외에서의 호평도 이끌었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수가 130여개에 이른다. 찾는 곳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비결이 무엇일까? 첫째는 독창적인 안무를 추구한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한 노력들도 뒷받침됐다. 그는 일본 교토 퍼포밍 아트센터의 프로젝트로 3년간 일본 작업으로 아시아에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미국의 벨헤븐대학에서 객원교수로도 5년간 역임했다. 그가 지도한 벨헤븐 대학 학생들의 작품이 미국 대학 무용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지난해 세계적인 명성의워싱턴 JFK센터 무대에도 섰다.

이제 갓 40을 넘긴 젊은 안무가로서 거둔 성과라고 하기에 무게감이 적지 않다. 그는 ‘운’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움에 대한 가치 추구가 중요했다고 했다.

“예술은 새로울 때 존재가치가 있다. 새로움이 닫히는 순간 창작자의 생명도 끝난다. 나는 한국적인 무용을 선보이고 싶다. 그것에서 새로움을 찾을 것이다. 한복과 국악이 아닌 정서로서의 한국적인 가치와 동시대적인 감성을 혼재한 안무를 찾아갈 것이다.”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김성용에게 거는 대구 무용계의 기대감은 높다. 그러나 정작 그는 담담했다. 대구시립무용단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 분석 위에서 성장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현대무용단체로 1981년 창단돼 대구를 현대무용의 메카로 톱을 달리게 했던 대구시립무용단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언급했다.

“대구시립무용단의 춤을 보며 안무가의 꿈을 키운 내가 예술감독이 된 만큼 예전 만큼의 명성까지는 못해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는 꼭 시키고 싶다. 좋은 작품을 통해 대구에서 인정받은 후 서울과 해외무대에도 진출해 다시 대구를 무용의 도시로 알리고 싶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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