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위를 달리던
전철이 속도를 낮추자
햇살이 차창에
수채화를 그려놓는다
노을처럼
깊은 물감을 푼다
역내로 들어온 전철이
수채화를 내려놓고 있다
햇살은 물감을 찍어
서쪽 하늘을 더 붉게 칠하고
물보라꽃은 몇 걸음 처져
제일 깊은 강을 건너온다
◇노정숙 = ‘문학도시’ 등단, 시낭송가
부산강서문인협회원, 시집 <비꽃> 외 다수
<해설> 존재의 마지막은 언제나 아름답고 깊어서 장엄하다. 우리는 저녁 어스름이 그려놓는 강물의 흐름에서도 그 아름다운 장엄함을 확인한다. 강변 전철 차창에 그려진 저녁 으스름 수채화의 깊은 물감이 역내에서 새로운 전환을 몰고 온다. 햇살이 차단된 역내로 들어온 전철의 차창 저 너머로 더 붉게 번지는 노을. 곧 이어 물보라꽃을 반짝이며 깊은 풍광을 담아 흐르는 강을 발견한다. 하루는 시간으로 저물고 강은 물길로 흐른다. 만유는 저물고 흘러 시공을 유전(流轉)한다. 존재의 서쪽 하늘로 번지는 하루의 어스름에서 출발하여 강의 깊이를 헤아리는 시심에서 인생을 대유한 시인의 시선은 철학이 된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상의 이미지를 응축하여 강의 푸른 물길에 응집시킨 상징적 깊이가 명징한 이미지로 돋보인다.
-서태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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