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맡겨둔 커피와 미리내 가게
[문화칼럼] 맡겨둔 커피와 미리내 가게
  • 승인 2018.03.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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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힘은 나눔과 봉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비롯한 유니세프 등 여러 NGO와 개인들의 선행은 세상을 밝히는 따뜻한 빛이다. 이러한 조직화된 기부 활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서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나눔 문화가 있다.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s) 즉 맡겨둔 커피 또는 착한 기부 커피운동은 약 100여년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카페 소스페조’(Caffe Sospeso ; 맡겨둔 커피) 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커피를 한잔 마실 때 두잔 값을 지불하면 돈은 없으나 커피가 필요한 누군가가 후일 무료로 한잔을 마실 수 있도록 한 나눔 운동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커피 같은 기호 식품까지 도와야 하는 가 또는 생존에 직접 도움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는 가 라고. 그러나 때로는 우리에게 한 끼 식사 못지않게 커피한잔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의 핵심은 기부를 하되 나와 기호가 같은, 정서적 공감대를 함께 하자 또는 함께 누렸으면 하는 정신이다.

이 나눔 문화는 2010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즈음하여 이탈리아에서 ‘서스펜디드 커피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조직을 결성 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이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으며 특히 불가리아 에서는 150개 이상의 커피전문점이 동참하고 있다. 맡겨둔 커피 운동은 음식 나눔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서스펜디드 밀(Meal;맡겨두는 식사)이 등장했으며 세계적 외식 체인인 ‘서브웨이 샌드위치’는 특정 요일, 시간에 노숙인 에게 무료식사를 대접하는 서스펜디드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커피 프렌차이즈 브랜드 ‘로티 보이’가 직영점을 중심으로 동참하고 있다.

SNS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성 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문화는 고된 일상에서 ‘과시하지 않는 절대 익명’의 작은 커피 선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2013년 우리에게 알려진 서스펜디드 커피에 착안해 만들어진 한국형 시스템이 ‘미리내 가게’다. 돈을 미리 낸다는 것과 은하수(순 우리말 ; 미리내)의 별처럼 나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명명된 이것 역시 가게에 돈을 미리 지불하면 꼭 필요한 사람이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음식점, 학원, 목욕탕 그리고 미용실과 복싱 클럽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이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정인물과 상황을 지정해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 기부와 차별되는 특별한 매력의 기부 문화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생일인 사람에게 아메리카노 한잔, 금요일 첫 손님에게 치즈케이크 한 조각 또는 휴가 나온 군인을 위한 한 끼 식사 대접 등 자신이 좋아하는 기호 식품 그리고 대상자와 상황을 고려한 기부를 할 수 있음이다. 미리내 가게는 새로운 기부문화, 나눔 운동의 중요한 터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이 운동으로 인해 주고받는 이 모두가 잔잔하지만 따뜻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본다.

대구 미리내 가게는 금년 6월이면 시작한지 만 3년이 된다. 다수의 업체가 가입하여 가입회원 가게 상품 중심의 나눔 활동에서 나아가 연탄배달 행사 등 그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매월 미리내 가게 가입 회원들은 자발적 모임을 통해서 이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 모색, 지역 사회 확산을 위한 방안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운동의 주체는 가입 업체가 아니라 자발적 기부를 하는 거룩한 손길이다. 따라서 이러한 선한 손길과 마음들이 이 일에 동참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다양한 통로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 공연장을 중심으로 이 운동을 펼쳐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좋은 공연을 함께 나누고자 한 장의 공연 티켓을 기부 하거나 서울의 일부 공연장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객석 기부 운동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되겠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문화 도시락도 조금 더 서로의 정서적 눈높이를 맞추고 프로그램을 세분화, 다양화하여 만족도를 높이면 더 활발한 제도가 될 것 같다. 기부자들과 수혜자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공연장도 기부에 상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나눔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커피 나눔 에서 시작된 이것은 이웃을 위한 세심한 배려정신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운동이기에 우리 지역 사회에서 잘 키워나갔으면 한다.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하여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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