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듯 요염한 너…“꿈같은 첫사랑이여”
수줍은 듯 요염한 너…“꿈같은 첫사랑이여”
  • 윤주민
  • 승인 2018.03.21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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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휘영의 야생화 편지 (10)얼레지
우리나라엔 담자색 1종 자생
바람 잘 드는 낙엽수림 아래
제주도 제외한 전역에 분포
2월 해남 두륜산서 개화 시작
5월까지 강원 산악지서 관찰
초봄 지상 올라와 잠시 꽃피워
‘봄의 요정’이라 불리기도
군락으로 개화 기간은 2주
‘길수-소정’의 전설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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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야산의 얼레지

이른 봄 찬바람을 맞으며 운곡암을 지나 화야산계곡으로 들어선다. 아직 수목의 새순이 돋아나기 전에 ‘첫사랑’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그 첫사랑의 이름은 얼레지라는 여인이다. 봄꽃 중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어여쁜 자태를 뽐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고 요염하다. 마치 신윤복의 미인도나 춘화와 같이 치마를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으리라. 그래서 꽃말이 ‘바람난 여인’, ‘질투’이다. 봄날 처음 만나는 아름다운 꽃이라 해서 ‘첫사랑’ 같은 상큼함조차 든다. 봄바람을 맞으며 꽃바람난 사람이 첫사랑과 마주한 것이다. 교토에서 유학하던 시절 봄이 되면 카메라를 들고 얼레지꽃만 찾아다니던 모리(森) 선생님이 있었다. 자주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내 방에도 모리 선생님이 준 얼레지사진이 걸려 있었다. 언젠가 카메라를 벗 삼아 산으로 나서겠노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그녀’도 만날 수 있으리라 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화야산계곡에서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화사한 그녀는 내 첫사랑 그 자체였다.



#얼레지의 특성

얼레지는 백합목 백합과 얼레지속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Erythronium japonicum Decne.이다. 속명 에리트로니움(erythronium)은 붉은색을 의미하는 에리트로스(erythros)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유럽에서 자생하는 얼레지가 대개 붉은 홍자색이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Joseph Decaisne(1807~82)이 일본에서 처음 발견하여 명명한 것 같다. 얼레지 속에 속하는 것으로 유라시아대륙에 4종 북미대륙에 20종 자생한다. 노란색, 흰색 색상의 것은 북미에서 주로 자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담자색의 에리트로니움 자포니컴(Erythronium japonicum) 1종만 자생한다. 간혹 변이종으로 흰색 얼레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흰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f. album T.B.Lee)라 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서식지로는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 일본 만주, 사할린에 걸쳐 분포한다. 다른 봄살이식물(spring ephemeral)처럼 바람이 잘 드는 낙엽수림 아래를 좋아하며 특히 비옥하고 습윤한 곳에 서식하는데 1,000m 내외의 산속 깊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주요 군락지로는 양산의 천성산, 해남 두륜산에서부터 2월 20일경에 개화하여 남양주의 천마산, 가평 연인산이나 태백산, 가리왕산, 화악산 등 강원도의 산악지대에서는 5월 말경까지 관찰된다.

계곡에 눈이 녹으면 낙엽수림 아래에서 가장 먼저 얼레지는 현호색, 바람꽃 등과 더불어 잎과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운다. 불과 몇 주가 지나면 꽃과 잎은 말라 지상에서 모습을 감춘다. 초봄에 10cm정도의 꽃대를 내밀고 연보라에서 분홍색 꽃을 꽃대 끝에 아래를 향해 한 송이씩 피운다. 꽃망울을 가진 개체는 싹이 지상으로 나온 지 10일 정도면 개화한다. 꽃대의 아랫부분에 보통 2장의 잎이 나있으며, 폭 2.5~6.5cm정도의 긴 타원형의 잎에는 짙은 자색 얼룩무늬가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무늬가 없는 것도 있다. 개화 시기는 대개 4~6월, 꽃잎과 수술은 6개이며, 수술은 장단 3개씩 있다. 지상에 잎을 펼침과 동시에 꽃이 피어나는데 낮에 햇빛이 비치면 꽃잎이 열려 젖혀진다. 그러나 햇살이 없는 날은 종일 꽃이 닫힌 채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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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의 생존전략

초봄에 지상부에 올라와서는 잠시 꽃을 피우고 그 후 입과 줄기는 죽어 버린다. 얼레지가 지상에 모습을 나타내는 기간은 불과 4~5주간 정도로 군락으로 개화하는 기간은 2주 정도로 짧다. 그래서 ‘봄의 요정’ 혹은 ‘봄살이식물(spring ephemeral)’이라 불린다. 이 부류의 봄꽃은 대개 곤충을 매개로 수분(受粉)하는 충매화(蟲媒花)에 속한다. 얼레지 수분의 매개자로는 이른 봄부터 활동하는 호박벌, 꽃등에과의 파리, 애호랑나비, 모시나비와 같은 곤충이다. 그중 호박벌이 최대의 매개자 역할을 한다. 또한 얼레지의 씨앗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옅은 황색의 방향체인 엘라이오솜(Elaiosome)이라는 부속물질이 붙어 있다. 이는 개미를 통해 씨앗을 멀리 퍼뜨리려는 전략으로 지방, 단백질, 비타민 등이 포함되어 있어 개미 유충에게 좋은 영양분이 된다. 개미는 얼레지의 종자를 개미집에 운반하여 엘라이오솜만 먹고 씨앗은 개미집 밖으로 버린다. 개미가 엘라이오솜만 떼어내서 옮기지 않은 이유는 엘라이오솜이 쉽게 건조되어 크기가 줄어들면 맛이나 영양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씨앗을 통째로 옮기게 된다. 얼레지 외에도 제비꽃, 애기똥풀, 금낭화, 광대나물 등의 씨앗에 엘라이오솜이 붙어 있는데 이런 식물들을 ‘개미살포식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개미를 이용하여 씨앗을 운반함으로써 생육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씨앗은 땅에 떨어져서 땅에 묻혀야 적당한 수분을 얻어 발아하는데 유리하다. 또한 종자를 먹어 치우는 다른 동물들로부터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얼레지의 인경에서 추출한 녹말을 녹말가루(전분)로 조리에 이용했다. 채취량이 극히 적어 최근에는 감자나 고구마에서 추출한 녹말가루가 많이 쓰인다. 어린잎을 데쳐서 산나물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얼룩취’라 불렀던 것 같다. 이른 봄에 넓은 두 장의 잎과 꽃대가 동시에 올라오는데 잎은 초록색 바탕에 자주색의 얼룩무늬가 있다. 이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나물이라 하여 얼룩취라 불렀고 이것이 얼레지로 전와된 것이 아닐까 싶다.

#얼레지 전설

옛날 연인산 속에서 화전을 하는 길수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겨울에는 숯을 구워 팔기도 했다. 산 아래 마을의 김참판 댁에 소정이라는 여종이 있었다. 소정은 원래 종은 아니었지만 흉년을 넘기기 위해 쌀을 꾸어먹은 게 화근이 돼 김참판 댁에서 종처럼 일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길수는 일 년에 서너 번 씩 김참판 댁으로 숯을 가져오면서 소정을 만나게 됐고 서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길수는 김참판에게 소정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참판은 길수에게 조 100가마를 내놓던가 아니면 숯 가마터를 내놓고 이 고장을 떠나 살면 허락하겠다고 한다. 삶의 터전을 내줄 수 없어 고민하던 길수는 결국 조 100가마를 가져오겠노라고 약조를 하고 만다. 하지만 조 100가마를 마련할 길이 없다.

고민하던 길수는 우연히 연인산 꼭대기 바로 아래에 조를 심을 수 있는 커다란 땅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쁨에 들뜬 길수는 그곳에서 밤낮으로 밭을 일궈 조를 심기 위해 아홉마지기를 만들었다. 길수가 심은 조는 무럭무럭 자라 이삭이 여물기 시작하고 길수와 소정의 꿈도 함께 익어가면서 둘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정을 내줄 마음이 없었던 김참판은 길수를 역적의 자식이라고 음모를 꾸민다.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서 가까스로 달아난 길수는 함께 도망가고자 소정을 찾아간다. 그러나 소정은 길수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는 소문에 그만 삶의 희망을 잃고 남은 생을 포기했다고 한다. 아홉마지기로 돌아간 길수는 자신의 희망이던 조를 불태우며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죽었다던 소정이 홀연히 아홉마지기를 향해 간다. 그곳엔 신발 두 켤레만 놓여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자리엔 철쭉과 얼레지가 불에 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지금도 봄이면 연인산 정상에는 얼레지꽃과 철쭉꽃이 눈부시게 피어오른다. 연인산에서 사랑을 기원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길수와 소정의 영혼이 아홉마지기에 영원히 남아 이곳을 찾는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보태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 깊은 숲속에/ 숨어 사는 너를 두고/ 누가 ‘바람난 여인’이라 일러 바쳤던가./ 그놈 참, 여자 보는 눈만은 탁월하네그려.// 이 첩첩산중에서/ 운명처럼 만난 까칠한 여인이여,/ 너의 숨겨진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깜찍하고도 요염하기 그지없네.// 선명한 이목구비하며/ 수줍음을 타는 듯 다소곳하면서도/ 은밀한 성역을 드러내 보일 줄도 아는/ 달콤하게 익어가는 여인이여,//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이 순간 서로 단단히 엮이어 있는가./ 이제 얼굴을 들고/ 나를 한껏 유혹할 테면 유혹해 보거라.// 나는 너의 잘 영글어가는/ 마음까지 곱게 펴서/ 한 필의 베를 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이고 황홀하구나.// 그런 네 앞에서야/ 흔들리지 않을 사내가 어디 있으며,/ 그런 너의 치명적인 유혹 앞에서야/ 넘어지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부디, 그 마음 주고 싶거들랑/ 한 사내에게만 주시라.// (얼레지/ 이시환)

칼럼니스트 hysong@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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