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바다
트라우마의 바다
  • 승인 2018.03.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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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트라우마(trauma)는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나, 심리학적으로는 ‘정신적 외상’을 뜻하기도 한다. 흔히 사고를 당하거나 어렸을 당시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멸감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감나무에서 떨어진 기억이 있는 사람은 감을 못 먹게 되거나 멀리하게 되고, 더 심한 경우에는 감빛 옷조차 못 입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여러 형태의 트라우마는 미세한 바이러스처럼 우리 생활의 면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트라우마가 있고 오롯이 본인의 실수로 인해 발생되는 트라우마도 있다. 전자는 이해가 필요하고 후자는 관용이 필요하다. 트라우마는 피해자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생길 수 있다. 한마디로 트라우마는 선도 악도 아니다. 평생 품고 가야할 질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영화나 연극 등 공연을 볼 때 필수적으로 먼저 정보를 득하는 곳은 각종 포털 사이트들이다. 그곳에서 별점을 보고 관람할 작품을 선택하곤 한다. 전문가의 평만큼이나 중시하는 것은 네티즌의 평이지만, 각 분야의 평론가와 기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전문가 평은 그야말로 작품의 흥행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다. 필자가 얼마 전에 본 ‘고지전’이라는 영화는 전문가와 네티즌의 평이 모두 높았던 작품이었다. 혹자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더 수작이었다고 평가하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참패를 했다. 6·25동란을 배경으로 고지를 탈하려는 남과 북의 상황을 그린 내용인데, 좋은 작품이었음에도 국방부를 비롯한 군 관련기관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후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군의 반공의지가 의심스럽고, 무엇보다 성공적인 포항철수작전을 승선인원의 부족으로 인해 아군을 사살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으로 왜곡시켰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물론 고증상의 오류와 함께 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군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전시(戰時)라 할지라도 모르핀

주사를 상습적으로 투약하는 장교의 모습은 과히 모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좀 더 면밀한 고증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작품성만으로 보자면 이해를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다큐멘터리가 아니지 않은가. 베트남전과 관련된 할리우드 영화나 그 밖에 전쟁을 다룬 영화치고 사실을 다룬 작품이 몇이나 되겠는가. ‘고지전’에서 ‘이상억’이라는 병사가 등장을 하는데, 그는 아군을 사살하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충격과 죄책감에 늘 시달리며, 생존한 전우들에게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장한다. 그에게는 전쟁의 상처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된 셈이다. 이렇듯 정신적인 외상은 육체적인 외상보다 더 큰 상처와 주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포용해 주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평생을 교직에 있었던 사람이 퇴직하던 날, 귀가하던 중 빗길에 차가 미끄러져 같은 학교 아이를 치어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 도로를 무단으로 뛰어든 제자를 미처 못 보고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경위를 조사한 결과 귀책사유가 아이에게 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에게는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상처가 되어버렸다. 사고 이후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는 두문불출이었다. 하물며 그의 노모가 병환으로 쓰러졌다는 전갈을 받고도 효자로 소문난 그는 아내를 대신 보낼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서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는 그런 주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포자기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초로(初老)의 그가 문득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사망한 그 아이를 위해서 속죄하기로 다짐하고, 소외계층의 아이들을 돌보며 후원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방과 후 학습지도는 물론이고 사비를 털어 남모르게 학비조차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며 울먹이는 아이의 전화를 받자마자 현관문을 박차고 나간 그가 우뚝 멈춰 섰다. 예전 그날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와 마주 서게 된 것이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날 이후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꽂히던 그 빗줄기를 뚫고 그는 그 아이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고, 다행히 당뇨병을 앓던 할머니도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긴 덕분에 무사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처음으로 그는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비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더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품고 보듬는 바다가 되어, 드넓고 푸르게 살아갈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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